[기자수첩] 이보환 음성·괴산 담당

지난 7일 오후, 자신의 모교인 괴산 칠성중학교에 장학금 500만원을 낸 이정석(57) 시인을 만났다.

기자는 전화로 인사만 나눈 뒤 나중에 취재할 생각이었는데, 수화기에 들려오는 말은 당초 계획을 앞당겼다.

"원래 살고있는 곳은 경기도지만 오전에 행사 이후 아직 괴산에 남아있다"며 "지금 칠성면사무소 앞 무슨 지역아동센터에 있으니 시간이 되면 와도 좋다"고 말했다. 곧 '칠성 꿈쟁이 지역 아동센터'에서 생활한복 차림의 그와 대면했다.

<문예사조>로 등단한 뒤 한국문인협회, 괴산문인협회에서 활동중인 시인은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주)정석타워 이사로 근무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타워크레인 임대 및 특수시공을 하는 업체로 몇명이 동업하는 형태다.

그는 이날 특강과 장학금 기탁 후 곧장 귀경하지 않고, 친구 동생이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에 간식을 전해주는 중이었다.

거금을 쾌척한 이유에 대해서 큰일이 아니라고 전제한 뒤 사람은 '벌어들인 만큼 쓰는 것'이라는 나름의 경제관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의 속사정을 들어보니 그다지 여유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아직 40∼60m 상공에서 직접 조종간을 잡는 데다 아내가 수년전부터 희귀성 뇌혈관 질환을 앓아 병원비도 많이 들어가는 상태다.

하지만 칠성중 1회 졸업생으로서 긍지는 대단했다. "고향에 오면 학교를 한바퀴 돌고 재학중 심었던 반송을 살피면서 지나온 삶을 되새겨본다"며 "소나무는 이렇게 키가 컸는데,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또 "제가 다니던 70년대 보다 학생수가 1/10로 줄어든 것이 가슴아프다"며 "학교의 명예를 빛낸 후배, 생활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적은 돈이지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탁사유를 설명했다. 모교사랑이 남다른 시인은 칠성중 졸업 이후의 학력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면서 헤어질 때 시집 한권을 건넸다.

'가방 끈 짧은 나'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사람이 나를 보고 가방 끊이 짧은 시인이라고 말했다./그 사람을 만나기로 약속한날, 나는 끈이 긴 가방을 메고 약속한 장소를 가기 위해 전철을 타는데 여러사람 사이에 끼어 고생했고 전철 문에까지 걸리는 위험천만한 수모까지 겪었네./남들이야 가방 끈 길면 모두가 정말로 좋아할지 몰라도/내게만은 가방끈 길어봤자 아무 데도 쓸모가 없고 활동하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는 거추장스러울 뿐인지라./평소 가방 끈 짧은 내가 편하다는 걸 새삼 알았네. / bhlee@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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