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아버지 애타게 그리는 김태웅씨 이산상봉 신청

 6.25전쟁 이듬해인 1951년 아버지 김원경(생존시 95)씨와 생이별을 한 김태웅(74·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씨가 아버지 사진을 어루만지며 이산가족 상봉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 신동빈 

"1천만분의 1이라는 희박한 확률이지만 아버지의 생존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6·25사변 이후 생이별을 한 이산가족들은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로 상봉을 진행해 한 명이라도 많은 이산가족이 가족을 만나고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6·25전쟁 이듬해인 1951년 아버지 김원경(생존시 95)씨와 생이별을 한 김태웅(74·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씨는 중학교 졸업앨범 속의 아버지 사진을 어루만지며 그리워했다.

김태웅씨는 지난 21일 대한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아버지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상봉을 신청한 것이다. 김씨는 또 혹시 아버지가 이북까지 무사히 넘어가 가정을 꾸렸다면 그 자녀들이라도 만나 생전 남한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했었다는 이야기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1951년 7월 23일. 아들 김씨는 아버지와의 생이별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강서 인근에서 인민군이 옥산면에 살고 있던 김원경씨 등 300여 명을 강제로 끌고갔다. 이에 김씨의 아버지 원경씨는 5남매와 어머니, 부인과 갑작스레 생이별을 하게 된 것. 당시 인민군들은 민간인들과 이북으로 이동 중 많은 전투를 치렀고, 그중 2~3명은 고향으로 되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김 씨 아버지는 북송과정 중 전투에서 사망했는지, 북한까지 무사히 도착해 살아있는 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상태다.

김씨의 어머니는 남편이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내용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속에만 담아둔 채 살아오다가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어머니는 전쟁에서 남편과 생일별을 하고 5남매를 억척같이 키워오셨다"라며 "자식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남편이 인민군들에게 끌려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아버지 연세가 환갑 때인 지난 1980년도부터 제사를 모시고 있다. 벌써 33년째 생존 여부를 알지 못하는 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있다.

"3형제 중 큰아들이었던 아버지는 인민군에 끌려갔고, 막내아들인 삼촌은 국군으로 전쟁에 참여했어. 아버지의 생사는 지금까지 알 수 없고 막냇삼촌은 전쟁 당시 전사했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 이후 김태웅씨의 마음에는 아버지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다.

김태웅씨는 "아버지와 상봉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지만, 만약 돌아가셨다면 생사라도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특히 "생이별후 63년의 세월이 흘러 이산가족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라며 "한국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회담에 임해 생사확인만이라도 해줬으면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녹아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많은 이산가족 신청 등록자가 고령으로 인해 해마다 사망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등록현황(매년 7월31일 현재)에 따르면 지난 1988년부터 2013년 7월말 현재 12만8천824명이 신청했으며, 이 중 5만5천960명의 신청자가 사망했다. 게다가 생존 신청자 중 77.4%(5만8천555명)가 70세 이상 고령자다.

충북의 경우 지난 2004년 3천2명이 이산가족으로 등록했고, 2005년 2천899명으로 103명이 감소했으며, 2007년에는 2천775명으로 또다시 124명이 줄었다. 이어 2010년에는 2천504명, 2013년에는 2천270명으로, 2004년부터 올해까지 732명이 감소했다. 감소 원인은 모두 신청대상자의 사망이다.

지난 2000년부터 2007년까지는 매년 평균 두 차례씩 이뤄졌던 이산가족 대면 상봉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2008년에는 성사되지 못했고, 2009년과 2010년 한 차례씩 이뤄진 이후 현재까지 3년 가까이 중단된 상태다.

2000년 이후 18차례의 대면 상봉과 7차례의 화상 상봉을 통해 남북 양측에서 4천321가족, 2만1천734명이 만났다. 제3국에서 이뤄진 민간차원의 상봉도 1990년부터 작년까지 1천742건이다.

하지만 전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13만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편 북한은 '23일 판문점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을 열자'는 우리 측 제안을 수용했다. 이에 따라 추석을 전후해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윤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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