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칼럼]정운현 언론인

7월 2일부터 시작된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가 지난 23일로 막을 내렸다. 53일간의 일정 가운데 국정조사의 하이라이트격인 청문회는 16, 19일 두 차례가 고작이었다. 당초 21일로 예정됐던 김무성-권영세 두 사람에 대한 증인 채택이나 청문회는 끝내 불발됐다. 23일 국정조사특위는 전체회의를 열었으나 결과보고서 채택에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끝내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국정조사는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사건의 진실규명에는 미흡했다는 게 세간의 중평이다.

대신 말은 많았다. 16일 출석한 원세훈-김용판 두 증인의 선서거부가 그 하나다. 개인사정을 이유로 증인이 불출석한 경우는 왕왕 있었지만 출석한 증인이 선서를 거부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물론 검찰총장 등 수사기관의 장에 한해 여야 합의로 증인의 선서를 생략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그건 경우가 다르다. '재판중'임을 이유로 당당히 선서를 거부한 원-판 두 증인은 진실을 증언하기보다는 청문회를 통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하고 자기변호의 장으로 활용했다. 국민적 분노가 쏟아진 건 당연했다.

결국 이번에도 어김없이 '국정조사 무용론'이 제기됐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청문회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야당은 대안으로 특검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미덥지 못하기는 매 한가지다. 또 새누리당이 특검을 받아줄 지는 의문이다.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있는 새누리당으로서는 이 문제로 다시 세상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얘기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특검이 대안이 아니라 국정조사 청문회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에서 그 교훈을 찾아보자.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이 워싱턴 소재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이 사건으로 닉슨은 결국 사임하게 된다. 이듬해 2월 미국 상원은 77-0으로 조사특위를 구성했다. 청문회는 그해 5월 17일부터 8월 7일까지 80일 동안 진행됐는데, 당시 미국 3대 주요 방송사가 순번제로 이를 전국에 생중계했다. 미국인의 약 85%가 이 청문회를 시청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총 중계시간은 319시간에 달했다. 반면 국정원 사건 청문회의 경우 국회방송과 일부 인터넷방송이 생중계하는 데 그쳤다.

특위의 활동기간을 보면, 워터게이트 특위는 구성일인 73년 2월 7일부터 보고서를 제출한 74년 6월 27일까지 약 1년 4개월에 달했다. 또 청문회가 끝난 뒤 74년 6월 27일 7권, 총 1,250쪽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상원 청문회 결과 40명의 행정 관료가 기소되었고 닉슨 캠프의 다수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반면 국정원 사건 조사특위의 활동기간은 총 53일에 불과했으며, 청문회는 불과 이틀에 그쳤다. 조사결과 보고서는 여야 미합의로 각자 반쪽짜리 보고서를 낼 모양이다. 청문회가 끝난 후 민주당은 원-판, 김하영 등 13명에 대해 위증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끝으로, 언론의 보도태도. 당초 이 사건의 단서를 추적하고 문제점을 부각시킨 것은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 종이신문이었다. 그러다가 공중파의 청문회 생중계를 통해 국민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다. 그러나 국정원 사건의 경우 주류 종이신문은 물론 KBS, MBC 등 공영방송조차 외면과 무시, 심지어 물타기로 일관했다. 서울 시청광장에 수만명이 촛불을 들어도 다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국회의 청문회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언론의 정확한 보도다. 국정원 사건 청문회가 '부실청문회'로 막을 내린 데는 언론도 한 몫 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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