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변광섭 청주시 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을 주제로 한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관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작품의 내용, 공간의 특성, 그리고 작품과 공간의 조화에 감탄을 한다. 실용미학이라는 공예의 오래된 관습이 파괴되면서 새로운 영감과 끝없는 창조의 블랙홀에 빠져들 것이고, 넓고 높고 거칠고 야성적인 담배공장의 웅장함을 보며, 60개국 3천여 작가들의 작품이 거친 공간속에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며 야릇한 감흥에 젖을 것이다.

'운명적 만남'의 기획전1관은 재료와 기법과 디자인과 시공의 경계를 넘나든다. 때로는 과학적이고, 때로는 철학적이며, 때로는 심미적이고, 때로는 운명적이다. 공예의 영역이 미술의 모든 장르를 포용하고 융섭하며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선도하고 있음에 감탄한다.

케이트 맥콰이어는 버려진 자연계의 일상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고자 했다. 깃털 하나 하나를 닦고 모아 거대한 패턴을 만들었다. 작가는 그 안에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용솟음치는 생명의 기운을 찾고자 하지 않았을까.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조안나 바스콘셀로스는 작품을 통해 일상의 반전을 꿈꾸고,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했다. 버려진 옷, 낡은 섬유조각들이 하나 둘 모여져 장대한 생명체로,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회적 이슈로 돌아왔다. 한국의 도예가 이강효는 청자와 백자, 옹기와 분청사기의 숨막히는 도자사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중국의 주락경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작품을 통해 조형 도자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으며, 옻칠작가 최영근, 일본의 도예가 미와 큐세츠, 중국의 루빈, 미국의 목공예가 헌트 클라크는 사람·자연·문화의 만남, 긴장과 갈등과 관계, 생사의 문제, 인간의 세계와 신들의 세계 등을 총체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기획전2 '현대공예의 쓰임'은 섬세하고 미려한 매력을 품고 있다. 가네코 겐지라는 일본 감독이 지휘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주제가 말해주듯 현대공예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화답하려는 것일까. 도자의 조형성을 최소화하고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고, 실용적이기에 내 삶의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에 젖는다. 그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거실, 주방, 침대, 서재, 사무공간 등에 꽃이 되고, 삶의 마디에 벗이 되며, 더 나아가 예술의 가치를 품고 있으니 공예는 곧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진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초대국가인 독일관으로 발길을 옮기면 간결한 디자인, 명쾌한 색상, 실용성과 기능미를 품고 있는 독일 공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패션, 쥬얼리, 도자, 가구 등 모든 작품에 걸쳐 군더더기 없고, 간결하며, 혁신적이고, 유용하며, 아름답고 심미적이며, 세월의 때를 타지 않고 인간의 감성을 변주하며 삶의 공간까지 윤택하게 해 준다.

어디 이 뿐인가. 청주국제공예공모전은 더 이상 신진작가의 등용문이 아니다. 입선작가 대부분이 지역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중견작가들이다. 장르의 벽이 허물어지고, 기법이 다양해졌으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실용과 예술·과학과 철학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또한 이탈리아 최고의 유리공예, 핀란드의 생활공감, 일본의 디자인, 독일의 패션스타일 등을 만날 수 있는 국제산업관,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하고 컬렉션할 수 있는 국제아트페어, 연예인들의 미술세계를 훔쳐볼 수 있는 스타크라프트, 무형문화재와 명장들이 직접 무대를 만들어 자신의 아픈 삶과 심오한 예술의 깊이를 소개하는 워크숍, 살아있는 공예교육의 산실을 꿈꾸며 체계적으로 준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버릴 게 하나 없다.

공간과의 조화로움도 관람객들을 감동하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도시의 흉물로, 애물단지로, 사회적 문제로 낙인 찍혔던 공룡같은 건물이 공예비엔날레 행사장으로 사용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아냥거렸다. 그렇지만 되레 낡은 건물이 주는 매력, 칠하지도 않은 생얼미인 그대로의 모습에 예술작품이 조화를 이루면서 천생연분이라는 박수가 쏟아졌다. 우리는 보았다. 전시장을 향해 자박자작 걸어가는 발걸음에서, 불 꺼진 담배공장의 건물 곳곳에서,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 작품을 보는 환환 미소 속에서 백만 송이의 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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