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창공]400m 남짓 은행나무길 저수지에 은행잎 떨어져 황금빛 발할 때 최고조

오는 듯 가는 듯, 짧지만 인상만큼은 강렬한 계절이 가을입니다.

가을속으로 한껏 내달리다 보면 곳곳에 발길을 잡아채는 아름다움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은 황금물결 너울대는 가을들녘보다 몇 배 눈부시고 고운 은행나무가 바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400m남짓의 40년생 은행나무길. 규모는 작지만 저수지와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짐이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일겁니다.

양곡저수지(문광저수지)는 가을출사지로 꽤나 유명한 곳입니다. 그 유명세는 아마도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착각을 하니 찰나의 순간을 담아낸 사진 한장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멈춰선 나는 무작정 삼삼오오 모여 폼나게 삼각대를 세우고 곳곳에 손짓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포토그래퍼의 일행 속에서 슬며시 끼어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양곡저수지의 아름다움을 담아왔다는 그들의 이야기엔 왠지 모를 중압감처럼 포스가 느껴집니다.

그들은 어떻게 아름다움을 탐하고 있을까. 카메라속 그림을 힐끗힐끗 훔쳐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습니다.

"아직은 조금 일러. 물이 조금 빠지고 은행잎이 바닥에 떨어져 황금빛을 발하면 그때가 최고지"

절정의 순간을 탐하기 위해 수면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른 새벽부터 어둑어둑 해가 저물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찾는 이들에게는 조금 부족할런지 모릅니다.

은행나무잎이란 놈의 심술은 하룻밤 찬바람에도 몽땅 쏟아내고 말테니 잠시 머문 나에겐 이 순간이 최고의 순간입니다.

점저 노랗게 노랗게 그리움이 쌓이듯 짙어집니다. 누구라도 멈춰서지 않을 수 없는 유혹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족나들이가 무척이나 사랑스럽습니다.

시작하는 사랑이라면 이들처럼… 이 순간 딱 맞는 싯구절을 찾아 고운 은행잎 한 장 넣어두는 것도 좋을테지요.

곱게 물든 단풍을 즐기는 것은 사람만이 아닌 듯 합니다.

주인 곁을 뱅그르르 돌며 떨어진 노란 은행잎을 물었다 놓았다를 반복합니다. 누구든 이곳에 오면 가을을 느낍니다.

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은 작은 시골마을의 진출입로입니다. 시골의 일상 속에서 바쁜 경운기가 달려옵니다. 어떤 자동차가 이보다 멋드러질 수 있을까요. 이 아름다운 길을 오가며 일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빈 벤치에 앉아 끝없는 먼 산을 바라보고 싶은 충동이 잠시 일었습니다. 고독한 남자의 계절이니까요.

햇살을 받아 빛나는 은행잎 하나를 따고 싶었습니다만 괜시리 미안해질 듯 했습니다.

아름다움은 멈칫하는 것, 아름다움은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랍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절정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한순간 꿈인냥 내일의 거친 찬바람에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왜 난 이 글을 쓰면서 가로등 불빛아래 기대어 쏟아지는 은행잎을 맞던 오래던 그날밤이 그리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은 10월 23일에 촬영했으니 양곡저수지 은행나무길 단풍은 다음주 중반까지 절정일 듯 합니다. / http://blog.naver.com/thdgk04/30178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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