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한인섭 정치부 부국장

이시종 충북지사가 호남권을 추월한 인구수를 근거로 내세운 '영충호 시대'라는 신조어는 전과 달라진 충청권의 '상승세'를 잘 압축했다. 인구 증가 추세가 일시적 인 게 아니라 상승 커브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시작한 시점에 잘 맞춰 타이밍도 좋았다. '영충호가 어디있는 호수냐'며 뜨악한 물음표를 내던지는 축도 있긴 하다. 그러나 고래(古來)로 수도권과 영·호남이라는 삼각구도 탓에 입지가 어정쩡했던 충북이나 충청권의 새로운 아젠다로 손색이 없다 평가할 만하다.

충북의 도백(道伯)이 정치적 색깔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공감대를 확산 한다면 지역민들에게 더 없는 긍지를 불어 넣을 수 있어 모처럼 좋은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이 지사의 행보는 국회의원 선거구 증설을 놓고 청주를 지역구로 한 정우택 의원(새누리당)과 노영민 의원(민주당)이 치고 받듯 쏟아놓은 정치적 공방에서도 한걸음 비켜 선 스탠스를 취했다. 정 의원이 인구가 적은 호남권에 비해 충청권 의석수가 5석 적은 탓은 민주당 호남권 의원들이 '주범'이라는 주장을 새누리당 중진최고위원회의에서 거론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노 의원 역시 정 의원 주장을 '정치적 공세'로 보고, 인구비례만 고려한 선거구 증설 논의는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인구가 적더라도 시·군의 지역대표성을 받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노 의원 주장은 호남권 주장과 맞아 떨어져 '호남 편들기' 아니냐는 오해를 살 소지가 컸다.

두 의원이 주장한 내용은 헌법재판소 판결 취지와 18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된 선거구 조정 과정에서 논의된 다양한 요소 가운데 서로 입맛에 맞는 '매뉴얼'만 취한 것이다. 두 의원 주장이 다 맞을 수도 있다. 동시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 의원은 지역정서를 건드려 귀에 솔깃할만한 발언을 내놓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노 의원의 경우 호남세가 강한 자당 논리를 대변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지사의 행보는 적어도 이들의 전형적 정치 공방과는 달라 보였다. '정치'를 배제한 듯한 이 지사의 고단수 정치행위는 오송 역세권 공모사업 실패와 충북경제자유구역 충주 에코폴리스 사업자 공모 실패라는 도정의 아픈 '급소'를 가릴만한 '구호'로도 그럴 듯 했다. 마침 이 지사가 '영충호'라는 깃발을 내건 시점이 3차례에 걸친 사업공모에 실패해 손을 뗐거나, 첫 공모에 실패했을 무렵이지 않았나. 그럼에도 잇단 도정의 패착과 '영충호 시대'를 연결하려 하지않는 것은 상당한 명분에다 일정한 진정성도 엿보였기 때문 아닌가 싶다.

이랬던 이 지사의 '영충호 논리' 앞 뒤를 뜯어보면 이제 갈림길을 맞았다는 진단도 가능하다. 현재까지는 누가 봐도 '행정'이라는 영역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치공방으로 비쳐질 조짐이 일찌감치 나타났다. 지난 3일 민주당 중앙당 지방선거기획단 주관으로 충북도당이 마련한 '2014년 충북의 새로운 모색'-'지방선거 정책개발을 위한 전국순회 토론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내년 6.4 지방선거 준비를 본격화하려는 민주당 토론회에서 남기헌 충북도정 정책자문단 공공혁신분과위원장(충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이 발표한 '영충호 시대 의미와 발전 방향'은 이런 우려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알려진대로 남 위원장의 발표 내용은 충북발전연구원 주문에 따라 지난달 28일 개최된 '영충호 시대 발전 전략 간담회'에서 한차례 발표된 것이다. 말하자면 충북발전연구원이나 충북도정 범위에서 '주문 생산' 된 내용이 불과 며칠만에 민주당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도모한 자리에 그대로 옮겨졌다.

특정교수의 독립적 의견과 주장은 어느 장을 막론하고 수요에 따라 개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삼척동자가 봐도 한참 다른 사안 아닌가. 굳이 남 위원장의 표절 문제를 거론할 것도 없이 당사자나 충북도나 충북발전연구원이나 분별력을 의심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선거국면이다. 모처럼 공감할만한 아젠다가 '몰염치'와 '정치'에 반토막 날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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