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 한인섭 부국장

충북도의회가 요즘 조용할 날이 없다. 17일 오전 도의회 현관 앞에는 충북학교학부모연합회와 진천지역 학부모연합회, 운영위원협의회에다 진천 이장단협의회·주민자치협의회 소속 40여명이 삭감된 진천 단설유치원 예산을 살려 놓으라는 항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같은 시간 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 복도엔 30여명의 사립유치원연합회 회원들이 반대 침묵시위를 벌였다. 충주 단설유치원 예산을 처리할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열릴 18일에는 찬반으로 갈라진 학부모와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이 더 많이 몰려 올 게 뻔하다.

진천 단설유치원 예산 삭감 후폭풍이 지속되고 있는 걸 보면 지방의회가 관련업계와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보여주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이 추진중인 공립 단설유치원 설립은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 애초부터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단설유치원은 양질의 서비스를 최소비용으로 교육 수요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대도시나 농촌 시·군에서나 학부모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공립유치원들이 입학원서를 접수하면 가족들이 총출동해 2, 3일씩 줄을 서곤하는 풍경을 연출한다. 누구든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녀를 키우려는 애쓰는 모습은 '경향'을 따질 게 없는 일이다.

반면 업역이 겹치는 민간유치원 업계는 교육당국과 상반된 목소리를 내놓는다. 공립유치원이 들어설 경우 가뜩이나 원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민간유치원의 영역은 좁아 질 수 밖에 없다. 이들은 단설유치원에 대규모 예산을 투자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투자 효율성이 떨어져 설립 자체가 예산낭비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공립 운영비도 만만치 않아 결국 학부모들이 세금으로 부담하는 꼴이라 소수를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국비를 들여 새로운 시설을 마련할 게 아니라 민간 지원을 강화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할 게 아니냐며 목청을 높인다.

거듭된 논란에도 교육당국은 매년 단설유치원 설치 계획을 쏟아낸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진천이나 충주 역시 찬반 양론이 대립됐다. 그럼에도 도의회 교육위원회는 타당성 있는 사업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2014년 사업 예산 78억원은 무난히 상임위를 통과했다.

문제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전액 삭감과 교육위원회 의결 내용이 관철돼야 한다는 취지로 제출된 '수정안'이 도의회 본회의 전체의원 표결에서 부결된 것이다. 대개 국회나 지방의회나 해당 상임위 의결안은 예결위나 본회의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수용되는 게 보통 일이다. 예결특위가 예산을 증감하는 일은 얼마든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처럼 통째로 날리는 일은 매우 드물다. 사업비가 전액 국비인 경우 더 그렇다.

그렇다면 도의회 예결위가 고려할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가 문제다. 도의회는 반발이 거세지자 '의견수렴 절차 하자와 주민 공감대 부족'을 들었는데, 이 정도는 해당상임위가 거론 할 일이라 궁색하다.

사립유치원 단체 대표를 역임했고, 가족명의로 어린이집 여러개를 운영하는 특정 도의원이 예결위에서 예산을 다뤘던 것도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개인사업과 유관한 상임위에 얼씬도 말아야할 일인데, 쟁점이 된 예산을 다룬 것은 '선'을 한참 벗어난 일이라 학부모들의 비난을 받을만하다. 도의회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의 횡포라는 주장과 정치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냐는 학부모들의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다.

사업을 추진한 충북도교육청 역시 예산안 제출에 앞서 논란이 없을 정도로 공감대를 확보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민간업계의 반발을 아예 잠재우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결국 대립된 이해관계와 갈등은 대의기관인 도의회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도의회 예결위 결정은 교육위에 대한 월권으로도 볼 수 있다. 본회의 의결 결과 역시 흔한 일이 아니라 '뭔가 있지 않냐'는 시각과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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