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흥덕문화의집

제주 워크숍에서 만난 젊은 사진가가 말해주길 어느 지역에서는 연말에 청년 작가들 100여 명이 모여 서로 서로 작품을 사고파는 난전을 벌인단다. 사진, 음악, 미술, 문학 등 여러 방면의 예술 청년들과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경매하면서 즐겁게 논다는 말을 들으며 무척이나 부러웠다. 무엇보다도 그 어디서 100여 명이나 되는 청년 작가들이 모여들었을까, 다들 어엿한 전시 한 번, 발표회 한 번 제대로 못한 작가들이어서 소외된 느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자기들끼리 난전을 틀고 서로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축제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갈수록 초고령화 시대로 가는 문화 예술판에서 주목해야 할 일이지 싶다. 아무리 나이가 대수냐고 하지만 어느 단체 막내가 사십이 넘고 예순이 넘었고, 새로운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는다면 재미없는 판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청년 프로젝트를 벌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나눈 적이 있다. 청소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청년들 이야기를 가끔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기에 젊은 피 수혈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뜻에 공감하기도 했다.

젊은 피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얼마 전 대학생 문학 동아리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맹숭맹숭했던 기억 때문인지 지역에 남아 있는 청년들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자기가 하는 일과 꿈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느끼는 거리감이란 이물감 바로 그것이었다. 대화를 나누고 웃고는 하지만 코르크마개 같은 것이 중간에 막고 있는 듯한 이물감은 무엇일까,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이 어떻게 다르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오늘의 현실과 상상을 보여줄 수 있는 자기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공감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줄줄이 밀려드는 생각에 치여 먼저 꺼내든 것은 청년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다.

지역에 남을 청년들과 바깥으로 떠나는 청년들, 그들의 현주소가 궁금하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 청년들이 기성판에 끼어도 전혀 낯설지 않고 거침없이 소통할 수 있는 난전과도 같은 판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대학 시절엔 그러지 않았는데 왜들 그러느냐고, 현실에 쫓기고 미래에 저당 잡힌 젊은 속내를 이해하고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판을 꾸려갈 수 있는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많은 걸 내려놓아야 하고 비워주어야 하고, 흉금 없는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 청소년과 청년 시기는 너무나 짧고도 길다. 거리 나무처럼 쉬이 늙기도 한다. 기성판에 끼어들 수 없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고심해봐야 한다. 세대 탓만 해선 안 된다. 너무 일찍 취업과 결혼 등 부채의식에 잡혀 젊다는 특권마저 백기투항식으로 버리게 해선 안 된다.

어른들만의 자리는 곧잘 잘 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고리타분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과거는 힘이 세다고 했다. 나이로 나누고 학벌로 나누고 경향으로 나누면서 진입을 자체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한다. 몇 번은 실망하고 또 실망하면서도 삼고초려해야 하는 것이 청년들이다. 지독한 음치도 끝까지 노래를 부르고 그에 박장대소를 하며 '대단하다 대단해' 하던 때가 바로 청년 시절 아니었던가. 청년은 실패한 삶마저 쇳덩이처럼 씹어 먹으며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어야만 하고, 그런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다. 젊은 시절 곧 잘 될 거라는 거짓말과 치기 어린 도전을 무던히도 뒷바라지해 온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욱더 '청년'이란 말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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