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 한인섭 정치부 부국장

존폐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정치적 부작용과 국민들의 불만은 있게 마련 일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일찌감치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민주당 역시 같은 공약을 내걸어 지난해 당론으로 확정했을 정도로 정치권과 국민들이 공감했다. 그래서 큰 논란 없이 폐지될 것 아니냐는 게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분위기였다.

이랬던 정당공천제 폐지 방침은 새누리당의 달라진 태도 탓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꼬였다.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둔 지난해 말부터 새누리당은 논란에 '물타기'를 하듯 '기초의회 폐지 카드'를 내걸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선상황만 고려하더라도 새누리당의 요즘 태도는 명분이 부족하다. 공당으로서나, 여당으로서 당당하지 못한 태도이다.

새누리당 당헌·당규 개정특별위원회가 내놓았다는 방안은 특별·광역시 기초의회(구의회) 폐지와 광역단체장 연임 축소가 주요 내용이다. 광역단체장과 교육감이 공동 후보로 등록하는 방식의 러닝메이트제 도입도 들어 있다. 후자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기초의회 폐지는 지방의원들이 반사회적 비리나 제구실을 전혀 못하는 의정활동 사례가 불거질 때 여론을 환기하거나, 격한 비판 끝에 나올 만한 주장이다. 지방자치나 지방의회 제도의 효율성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해 볼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부활 20년이 넘은 지방의회 안팎에서는 요즘도 "왜 이런 게 필요하냐"는 비아냥이 흘러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집행부 발목잡기식 의정활동이 그렇고, 당파적 이익·개인적 이익을 쫓는 행태를 경험한 이들의 입에서는 이런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지방의원들의 지나친 간섭과 월권을 경험한 지자체 공무원들도 성가신 존재로 여겨 불만을 털어 놓기도 하지만 '폐지'까지 거론 할 정도로 이해가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기초의회 폐지를 주장이나 논란 범위를 벗어나 제도 자체를 바꾸자는 것은 '자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보편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봐야 할 것이다. 폐지 논란을 차단하려면 우선은 유권자들이 제 역할을 할 지방의원을 잘 뽑아야 할 일이다. 여기에다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하거나 '일탈'을 차단할 수 있는 의정 감시 활동 등 대안을 찾는 게 맞지 존재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은 순수하게 받아 들이기 어렵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는 일과 마찬가지여서 과연 누가 귀담아 듣고,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지 의심되는 주장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논란은 공천제 존폐와 범위 정도로 압축돼야 한다. 더구나 6·4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기초단체장·기초의원 선거는 공천제 존폐 향방에 따라 결과가 달라 질 수 있다. 여·야 주요정당 후보간의 각축에서 무소속 후보들의 다자구도로 전환돼 종전 구도와 다른 결과가 나 올 수 있다. 현직 단체장이 가장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지만, '변수'를 다 고려하긴 어렵다.

여든, 야든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행사했던 기득권 유지 여부도 달려있다. 영호남 처럼 특정정당이 싹쓸이하는 경우이라면 기득권을 더욱 놓기 어려워 새누리당이 극구 동의하지 않거나,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게 바로 이 부분 아닌가.

공천제 폐지에 흔쾌히 응할 수 없는 새누리당의 사정과 명분이 전혀 설득력 없거나, 틀린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천제 폐지는 여·야가 합의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19대 대통령 당선 이후 바꿔야할 정치적 과제라는 점을 국민에게 약속한 대의명분 이었다는 점은 틀림없다. 존폐 장단점과 별개로 지방자치 부활 이후 드러난 폐단을 청산하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토대로 내린 결론 이었다. 정당이나 국회의원 기득권, 후보자들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이미 떠났던 사안이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기초의회 폐지를 들먹이거나, 아예 논의의 장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면 '꼼수' 정도가 아니라 기억력 박약한 정당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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