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오지도 않은 미래를 가지고 겁박하는 것은 난처하다. 은퇴 난민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 솔직한 심정이다.

학교 다닐 때는 대학진학을 놓고 겁을 준다. 대학을 잘 못 들어가면 마치 일생이 끝나는 것처럼 충고한다.

이제 열심히 일하고 은퇴하려 하자 준비 잘 못하면 난민이 될 것이라며 은근히 겁을 준다. 겁을 주어 설득내지는 마케팅하는 것은 익히 아는 한가지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은퇴를 앞둔 세대에게 이런 단어는 막연한 불안감을 높여 준다.

다른 한 쪽에서는 겁 먹은 사람들을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다. 베스트셀러 책을 보니까 감정, 마음이란 단어가 눈에 많이 띈다. 몇해 전 힐링이란 단어가 식상해졌나 보다. 단어 색깔만 바뀌었지 이런 트렌드는 우리 사회 한 구석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다. 그만큼 감정조절을 해야 되고 위로 받아야 될 사람이 많아진 탓이리라.

한쪽에선 겁을 주고 다른 한쪽에선 위로를 해줘야 되는 사회. 두 개가 심하게 횡횡하는 사회는 불안정하다. 겁 안 줘도 잘 준비하고 특별히 남한테 위로 받지 않아도 안정감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혹자는 과민한 반응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도무지 들어먹지 않는 시대가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소위 웬만한 말로는 통하지 않는 사회. 그리고 남에게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회. 스스로 정화되고 위로하기 보다는 남에게서 위로의 단초를 찾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찾아야 되는 사회.

은퇴란 단어는 중립적이다. 은퇴 뒤에 오히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비중이 적기 때문에 문제란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은퇴 난민이란 단어가 사방에 떠돌아 다녀도 반박이 적다. 그러나 은퇴기회, 은퇴행복, 은퇴천국이란 단어도 함께 나다니면 안될 게 무엇이란 말인가. 은퇴가 마치 죽으러 가는 고려장은 아니다. 은퇴 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너무 경제적인 기준에만 맞춰 모든 삶을 재단하다 보니 돈 없는 사람에겐 비참밖에 보이지 않는다. 꼭 그런가.

경제적인 준비는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다. 그걸 부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 밖에 건강적인 면, 심리적인 면, 관계적인 면 등 인간 생활을 영위하고 행복감을 주는 데 많은 요소가 있다. 물론 경제적인 것이 갖춰지면 다른 것은 좀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러리라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다.

이왕 은퇴 얘기가 나왔으니 지역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지역이 은퇴자들의 천국이 되는 방안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공업화 시대에는 지역의 젊은 층이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시대라면 지금은 오히려 은퇴자가 늘어나고 그들 중의 많은 사람은 지역으로 내려와야 되는 시대다. 그들이 안착하고자 하는 지역이 우리 지역이면 금상첨화다. 국토의 중심지대이어서 교통도 편리하고, 명산과 좋은 강도 많지 않은가. 굳이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까지 갈 필요가 있겠는가.

은퇴자는 생산보다는 평생 모은 재산을 소비하며 살아야 한다. 은퇴자를 위한 비즈니스는 번창할 수밖에 없다. 관련 산업과 서비스업도 발달하고 이 분야 고용도 확대될 것이다. 은퇴자들이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기 위한 인기 있는 지역이 되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고 지역 위상도 덩달아 올라간다.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 환경, 의료서비스, 커뮤니티, 노인 일거리, 정서적인 면 등 노인들이 노후를 보내기에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결국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지의 측면에서 볼 때 다른 지역보다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지역이 고향인 사람들이 되돌아 오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 타지가 고향인 사람도 우리 지역으로 찾아오게 하는 유인 정책이 적절히 구사되어야 한다. 은퇴. 개인이나 사회나 받아들여야 할 시대 조류다. 이왕이면 현실적인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긍정적, 적극적 해결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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