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삶은 묘하다. 기쁨과 희망, 사랑과 감동의 이야기는 짧고 긴장과 고단함과 불안과 공포가 시시각각 밀려온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 속 공포로부터 해방을 꿈꾸지만 세상은 가당찮다는 듯 또 다시 막다른 길로 안내한다. 이따금 그 길의 한 구석에 봄꽃이 피기 시작하고, 우리는 작은 희망을 찾고 간직하며 위로의 노래를 부른다. 뒤돌아보면 내가 달려온 그 길에는 삶의 신화가 고인돌처럼 남아있다. 켜켜이 쌓인 상처 속에는 수천 년 가꿔온 문명이 철갑을 두른 듯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던가.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고 쉽게 포기하며 쉽게 잊으려 한다. 이 때문에 우리 곁의 수많은 이야기가 속절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질 것이며, 풍경과 신화가 사라지면 사람들의 삶도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와 정신문화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며, 건축과 삶의 양식과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삶의 또 다른 이름은 '관계'가 아닐까. 사람과의 관계, 공간과의 관계, 시간과의 관계…. 우리는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통합 청주시 역시 청주와 청원의 새로운 관계를 맺고 더 큰 미래를 꿈꾸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겠지만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을 통합 청주시의 어젠다(agenda)라고 부르겠다. 시정정신을 읽고 역사적 가치를 계승하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청주의 정체성을 찾고 청주정신을 만들어야 한다. 70년 가까이 각기 다른 행정의 영역에서 목표와 지향점이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는 이를 하나로 엮고 청주만의 살아있는 정신과 미래가치로 빚자는 것이다. 천 년의 역사와 삶의 족적을 되돌아 본 뒤 그 속에서 청주만의 DNA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이야기를 구술채록, 스토리텔링, 아카이브 등으로 보존하고 특성화해야 한다.

#청주만의 DNA를 찾았다면 청주의 브랜드로 특성화 하고 글로벌 전략을 짜야 한다. 안동 유교문화, 전주 전통문화, 경주 신라문화, 부산 영상문화 등 그 지역의 고유한 삶과 문화를 특성화하고 브랜드화를 통해 글로벌 이슈 전략을 도출해 낸 국내외 사례를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으로 엿보면 좋겠다. 그리고 지역성(로컬)과 세계화(글로벌)가 조화를 이루되 청주만의 멋과 맛과 향과 결을 만들자는 것이다.

#통합에 따른 갈등, 도시와 농촌의 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도 필요하다. 농촌지역 주민들이 상대적인 불안감과 박탈감이 잔존해 있고, 일부 정치세력의 기득권 싸움이 물밑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 때문에 자칫 통합정신이 훼손되고 갈등과 불신과 반목으로 얼룩지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베풀어야 하는 것은 베푸는 미덕이 필요하다. 특히 도시와 시골은 정서나 문화양식 자체가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고 상생의 길로 갈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문화다양성, 문화네트워크, 문화협력 사업이 필요한 것이다.

#청주의 미래식량이 무엇인지 면밀한 분석과 이에 따른 전략 수립이 중요하다. IT, BT, CT 등 나라 안팎에서 전개되고 있는 경제전쟁의 이슈 포인트는 무엇이며 청주만의 특성화된 자원은 무엇인지 연구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추진 중에 있는 문화산업, 바이오산업, 관광산업 등도 냉정하게 따져보고 새로운 100년의 식량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직지, 읍성, 산성 등의 역사적인 자원과 초정약수와 한글, 청남대와 대청호, 농경문화 등의 문화관광 자원의 융복합콘텐츠 개발도 필요하다.

# 균형있는 도시개발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4개 권역별로 특성화된 밑그림이 공개된 바 있는데, 이를 구체화하고 실현가능한 중장기전략을 짜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자칫 소외되거나 사장시키는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엿볼 수 있어야 한다. 도시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자 사람과 공간의 만남이며, 다양한 삶의 양식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공간이다. 성안길 일원을 비롯해 안덕벌, 수암골, 대성동, 서운동 등 근대의 발자취가 있는 곳은 낮고 느린 도시로의 여행이 가능토록 해야 할 것이며, 벌랏한지마을, 옥화구곡, 저곡리 농경마을 속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가 살아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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