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오너인 유병언씨는 종교인이다. 기독교복음침례회를 만들어 교주같은 영향력을 행세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여객선 이름을 직접 짓기도 했다. '세월호'도 그런 경우다.

하지만 여객선의 이름은 우리가 알고있는 그 '세월'이 아니다. 종교인답게 '세상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세월(世越)호'로 지었다. 그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쓰는 '아해'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부르던 '아훼'에서 따온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한걸까. 무척 흥미로운 기사지만 내가 놀랐던 것은 유씨 일가의 각종 비리가 고구마줄기처럼 엮여져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있는 동안 관계기관은 뭘했을까 하는 점이다.

세모해운 부도이후 10년간 수천억원의 재산을 모은 과정은 종교라는 이름의 탈을 쓴채 탈법과 불법이 있기에 가능했다.

'비리의 백화점'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세월호 참사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유병언이라는 이름과 청해진해운이라는 기업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월호가 침몰되지 않았다면 유씨 일가의 온갖 비리와 불법행위도 조용히 묻히고 유씨는 억만장자 사진작가로 품위있게 살면서 사회적인 지위를 누렸을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국의 묵인과 비호가 있지 않았다면 과연 수천억대 재산을 모았을지 의심스러워 할것이다. 그가 재산을 축적하는 동안 승객들은 낡아빠진 싸구려 노후선박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선원들은 동종업계 최저수준의 살인적인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유씨 일가에 대해 사정당국이 칼을 빼들었다. 횡령, 배임혐의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수천억원대 특혜대출에 서울 강남, 울릉도, 제주도와 미국, 프랑스 등 국내·외에 어마어마한 '부동산 쇼핑'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뒷북친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정도는 빙산의 일각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지만 사고가 마무리되는 순간 뜨겁게 끓어올랐던 냄비가 식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잊혀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니 아무리 후속대책을 쏟아내도 그 때뿐이다. 임기응변식 처방에 그치기 때문이다.

요즘 마피아를 패러디한 용어가 유행하고 있다. 시초는 모피아다. 재무부 출신들이 정계, 금융계에 진출해 산하기관을 장악하고 강력한 영향력으로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빗대 관피아, 해피아, 산피아, 교피아, 국피아, 원전 마피아, 철도 마피아 등 시리즈로 이어진다. 이런 용어가 유행하는 것은 정부기관 퇴직관료들이 산하기관과 관련단체의 요소요소에 박혀 부패 커넥션으로 연결 되고 대형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피아들이 요즘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언론의 도마위에 오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초 '마피아와의 전쟁'을 예고했다. 세월호 참사이후 청와대는 해피아와 관련된 비정상적인 관행에 대해 법무부에 후속조치를 맡겼다.

해운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과 해운관료들간의 고질적인 공생·유착관계가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해엔 원전비리가 터지자 원전마피아를 타깃으로 표적수사를 했다. 역시 사후약방문이다. 대형 철도사고가 일어나야 철도마피아를 칠 것이고 수천억원대 금융사고가 터지면 모피아 소탕작전에 나설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위관료들은 때가되면 낙하산타고 유관기관에 자리잡을 것이다. 이런 마피아의 폐해는 국민들은 다아는데 청와대가 몰랐을리 없다. 그런대도 관행을 되풀이하면서 대형사고만 터지만 그때가서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이 마피아에 대해 난도질해댄다.

이번 사태로 해피아가 사라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피아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아마 재수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잠시만 납짝 엎드리고 있으면 다시 마피아들이 활개칠 것이다.

그 고리를 끊으려면 청와대부터 실천해야 한다. MB정부에선 15년차 방송기자가 청와대 부대변인 몇개월한뒤 KT 고위임원으로 임명됐다. 정권 말기엔 비서관들이 공공기관 감사로 임명됐다.

박근혜 정부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 3월 한국일보에는 공공기관장에 임명된 친박인사 45명 명단이 실렸다. 임원급을 포함하면 수백명이다. 대부분 대통령선거때 캠프와 여권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이러니 관료사회가 바뀔 이유가 없다. 사회 각분야에 썩어문드러진 병폐가 곪아터지기 전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들의 습성이다. 진정으로 관료사회를 혁신하고 나라를 바로잡으려면 청와대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 "청와대부터 변해야 한다" 관련 반론 보도

위 보도에 대해 기독교복음침례회는 1981년에 설립되었고, 유병언 전 회장이 교단을 설립해 교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은 없다고 알려 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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