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카페-이 영 희

이 골목도 아니다.

벌써 30분이 지나고 보니 운전자는 마음이 급해졌는지 옆 사람이 겁이 날 만큼 과감하게 운전을 한다. 어둠이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하고 거기다 비까지 내리니 앞뒤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뿐이고 식당에 전화를 해도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지 못 한다

길에 관심이 없고 방향감각이 없어서 한번 간 길도 잘 못 찾는 길치란 것을 잠시 잊었었나 보다. 첨부된 약도를 본 후 찾을 것 같다는 후배 차를 타고 오면서 계속 약도를 펴 보아도 상황이 진전되지 않는다.

모임 약도를 첨부한 친절은 고마우나 초행인 사람에겐 숲과 나무가 다 표시되어야 하는데 나무만 세밀하게 표시를 했지 숲을 볼 수 없는 약도인 것이다.

비슷한 이 골목 저 골목을 한참이나 헤매다가 그냥 돌아가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는데 드디어 앞에 모임 장소가 나타났다.

삶의 작은 꿈들이 그렇게 갈망할 때는 오지 않고 달아나는 것 같더니 포기하니까 홀연히 다가와서 이것이 인생이라고 하더니만.

무려 한 시간이 지나 도착한 민망함으로 이런 구석에다 장소를 정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아직도 내비게이션이 없는 사람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유머가 강점인 친구는 "조선시대 길을 가장 잘 찾았던 왕비 이름이 내비였는데, 길을 못 찾으니 내비는 아니고 왕비가 되었더라면 집을 잘 지키는 경비가 되었거나 사람들이 다 기다리는 가뭄 끝의 단비가 되었겠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처음부터 이 모임에 참석할 양이면 내비게이션이 있는 차로 오던지, 아니면 스마트폰 앱을 깔아 사용방법을 익혔더라면 이런 헛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때가 때인 만큼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오랜 기간 일정한 날짜를 정해 놓고 하는 모임인데다 위로할 일을 미룰 수도 없어서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가 이런 낭패를 본 것이다. 청주가 아무리 발전 되었어도 찾지 못할까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한 것도 한몫했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통계적으로 여자들이 언어 능력 암기력 등은 앞서가지만 공간 지각 능력은 더 떨어진다."라는 학설이 있다. 공감을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오늘 이런 시행착오를 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아는 것보다 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유비무환이란 말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했으니 아직도 나는 디지털 시대에 사는 아날로그적 이방인인가 보다.

각종 모임에서 회자되는 "나이 들어 대접받는 7가지 비결"이 있다.

나이 들수록 집과 환경을 깨끗이 하고(Clean Up) 회의나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며(Show Up), 말하기보다 잘 들어주고(Shut Up) 언제나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며(Cheer Up), 용모와 의복은 항상 단정히 해서 구질구질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고(Dress Up) 돈이든 일이든 자기 몫은 확실히 하며(Pay Up), 포기할 것은 깨끗이 포기하고 즐겁게 지내야 (Give Up) 품위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세븐 업(7-Up)을 강조하고 있다.

세븐 업(7-Up)에 대해 수긍하면서도 모이다 보면 듣기보다 말하게 되고 좋지 못한 남의 뒷담화에 맞장구를 칠 수 있어서 열심히 참석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모임에 참석했으면 이 세븐 업(7-Up)대로 잘 듣고 박수를 쳐주면서 수고했다는 소리만 하면 될 것을 오지 않음만 못하게 되었다. 송곳은 주머니에 아무리 잘 넣어도 언젠가는 주인을 찌른다고 하더니 나이에 비례하지 못하는 얇은 두께의 수양이란 것이 오늘도 주인을 자해하고 말았음인가.

급하면 돌아가라는 옛말을 생각하고 잠시 정차해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갔으면 시간과 연료를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목표점에 도달하는 방향과 과정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열심히만 내달으며 헛발질을 한 결과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20여 일이 지나면서 지금 대한민국은 길을 잃은 길치같이 허둥대며 민낯을 보이고 있다.

생때같은 자식을 순식간에 잃고 아직도 생사를 모르는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할지 그분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기도와 추모밖에 할 수 없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차가운 바닷속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뜻한 집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소서."

연일 보도되는 모순되는 제도와 시스템에 안전 불감증의 관련자들을 보면서 비리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부끄럽다.

안전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고 안전 수칙도 위반한 배에 물이 차올라 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때도 "가만히 있으라"라고 해서 유명을 달리하게 한 통곡할 인재라서 더 부끄럽다.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제때에 다 구조하지 못하여 아직도 실종으로 처리하는 현실이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지.

이제 아이들에게 준법정신을 지키고 바른 생활을 하라고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우리들은 심사숙고하고 고민해야 한다.

쉽게 생각하고 대책 없이 길을 잃어 헤맨 자신이 "가만히 있으라"라고 한 옵스큐라와 겹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 나는 또 내가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을 것인가… 모르게 거칠어지는 내 언어만큼 거칠어진 마음이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덜컹거렸다…'는 도종환님의 '오늘 하루'라는 시구가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오늘 하루 길치는 봐줄 수 있지만 내리막길의 길치가 되지 말자.

위기가 기회니 만치 완전한 로드맵으로 재난 대응 체계를 확립하여 국가 융성의 때를 놓치는 길치 같은 국민은 되지 말아야 한다.

하늘도 희생자들의 슬픔을 아파하는지 굵은 빗줄기를 내려 메마른 대지를 적신다. 이 비가 평안을 가져다주는 가뭄 끝의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