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까지 오송규 수묵전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한 점의 먹그림이 마음을 툭 놓게 한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과 편안함이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단정하면서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먹의 사선, 그 앞을 차지하고 있는 완만하면서도 웅장한 능선, 그리고 평화롭게 흐르는 강물과 짙푸른 나무 숲.

충북문화관에서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오송규 교수(충북대 조형예술학과)의 수묵전 '먹빛에 취하다'는 관객들을 무심(無心)의 세계로 안내한다.

먹의 농묵, 중묵, 담묵의 조화로 이루어진 그의 수묵화 30여 점은 단정함을 넘어 순수한 자연으로 다가온다. 산과 강과 나무와 학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서로를 품어주고 키워주면서 조화롭게 존재한다.

"무심한 듯 흐르는 물, 변함이 없을 것만 같은 산, 거기에 짙푸르게 서있는 나무들, 그리고 탁트인 하늘을 유유자적 날아가는 학. 이러한 것들이 저의 작품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산처럼 변함없이 푸근하게, 새처럼 자유롭게, 물처럼 느리고 여유있게, 꾸밈없이 촌스럽고 무심하게… 그렇게 저답게 살고 싶습니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의 영향과 관람객들의 외면으로 수묵화가 거의 사라져 버렸지만, 오 교수는 먹의 단순함과 담백함이 좋아서 지금껏 30여 년째 수묵화를 지키고 있다.

화선지에 먹을 흠뻑 바른 후 물이 묻어나지 않는 그 '적당한 순간'에 먹에 아교를 섞어 빗금을 완성한다. 대학시절부터 오랜 시간 동안 이 작업을 지속해 왔는데도 아직 그 적당한 시간을 모른다. 시간을 재기보다는 오로지 '감'으로 작업을 완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할수록 어렵기도 하고, 작업이 잘 풀릴 땐 어린 아이처럼 좋기도 하다.

여러 작가들과 하는 합동전시장에서 자신의 그림이 너무 칙칙하다고 느낄 때 '채색의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수묵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먹은 그에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반자이자 친구다. 가끔 먹에 조종 당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올해 들어서 오 교수는 배경을 담묵으로 바꿔 그림의 밝기를 확 높였다. 지난 작품보다 훨씬 밝아진 작품들이 본인도 채색의 유혹을 버릴만큼 기분이 좋지만, 주변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수도권에서 오랜 대학강사 생활을 하다가 충북대 교수로 정착한지 6년. 그동안 22번의 전시를 가졌지만 청주에서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해야지...' 늘 숙제로 안고 있으면서도 늦게 시작한 교직생활에 충실하다보니 6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래서 이번 전시가 설레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오 교수는 물의 양에 따라, 먹의 농도에 따라, 시간의 길이에 따라 번짐과 맺힘이 이루어지는 먹작업을 통한 현대적인 수묵화를 고민하고 있다. 사람들이 진부함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수묵화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더 세련되고 현대적인 수묵화로 다가가기 위해 작품의 유리액자도 벗겨버렸다.

"전통적인 무거운 먹작업만 고집하지 않고 심플하면서도 현대적인, 그리고 조형화된 수묵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먹의 물성적 실존성'과 '먹빛의 표상적인 은유성'을 결합한 다채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깔끔한 현대미를 위해 풍경은 평면적으로 처리하면서 많은 걸 묘사하지 않고 화면 안에서 하늘, 산, 강,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그렇다 보니 동적인 요소가 없어 학(鶴)을 그려넣었다. 학은 그가 닮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 속 넓은 하늘을 고고하게 날으는 학(鶴)을 자신이라 여기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자유로운 경지를 만끽하는 진정한 소요유(逍遙遊)를 꿈꾸고 있다. / 송창희

333chang@jbnews.com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