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1987년 IMF 외환위기는 우리나라를 엄청난 변혁으로 몰고 갔다. 경제개발정책 이후 압축 성장을 하던 우리나라 경제는 일격을 맞고 력청거렸다. 그때 자발적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위기극복을 하자며 생겨난 운동이, 금 모으기 운동과 아나바다 운동이었다. 아나바다 운동은 '아껴 쓰고 나눠 쓰고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운동으로, 한마디로 물자를 절약하고 재활용하자는 운동이었다.

갑자기 아나바다 운동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런 운동이 상호간에 교류를 확대하여 이익극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측면 때문이다. 자기 분야에만 고집하지 않고 서로 융합하고 교류함으로써 만족과 이익을 최대화하고 있다. 독불장군은 생존하기 힘들다. 요즘 강조하는 창의력도 아이디어를 나누고 바꾸고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성, 발전한다.

금융 분야에서도 아나바다와 같은 현상으로 시장이 새로 생기고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파생상품 분야인데, 파생상품은 원래 근간이 되는 상품을 - 예를 들어 주식이나 채권 등 - 기초로 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거래하는 분야이다. 그런데 아류로 탄생한 파생상품 시장이,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원래 시장을 능가할 정도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것은 과거의 것을 잡아 먹으며 성장하는 진화의 원리가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면,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분야별로 살펴보자. 아마 이런 식의 접근은 처음 접하게 될 터인데, 금융에 대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쉽게 이해되리라 본다. 우선 '아껴 쓴다'는 의미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은, 원래 주식을 거래할 때보다 싼 비용으로 해당 주식을 매매할 수 있는 파생상품이 있다. 예를 들어 KOSPI200(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 등이 큰 200종목) 종목을 매매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지만, KOSPI200 선물 시장에서 사면 똑같은 효과를 누리면서 아주 적은 돈으로 매매할 수 있다. 이 밖에 개별주식, 주가지수, 외환, 상품 등에도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나눠 쓴다'는 개념에서는 구조화채권 등을 투자자 한 명이 매수하면 상당한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에, 분류를 하여 상환 조건 등을 달리하고 신용등급을 별도로 부여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채권을 나눠서 상환 조건이 나쁜 물건은 금리를 더 주고, 상환 조건이 좋은 것은 금리를 적게 주는 방법으로 투자를 유도한다. '바꿔 쓴다'는 개념은 아예 개념마저 일치하는 데, 대표적인 예가 파생상품 스왑(SWAP) 시장-스왑(SWAP)은 '바꾼다'는 의미 -이 있다. 고정금리와 변동금리를 바꾸는 이자율 스왑, 외환끼리 바꾸는 외환 스왑 등 스왑시장은 거래당사자들끼리 합의만 되면 만들 수 있다.'다시 쓴다'는 개념은 대표적인 게 지수연동형펀드(ETF) 이다. 요즘 투자가 아주 활성화 된 상품으로, 이 상품은 본래 주식이나 채권 등을 묶어 지수를 만들고 펀드화 한다. 삼성그룹주를 사고 싶으면 일일이 사지 않고, 삼성그룹주의 주가를 지수화한 ETF에 투자하면 삼성그룹을 사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시장들은 전통적인 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장들이었으나, 새로 창조하여 투자 상품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들이다. 아나바다 생각으로 만든 상품이 다양한 투자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재산증식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향후 금융 상품의 진화는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스스로 진화,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업계를 예로 들었는데, 어느 분야나 아나바다 할 것은 얼마든지 있다. 또 이 개념을 넘어선 다른 개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오픈 마인드와 실험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다른 것을 받아들이려 하는 마음과, 이를 받아들인 다음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시도해 보아야 한다. 인구가 늘고 수명이 길어지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보다 많은 가치를 창조하는 창의력에 그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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