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논설실장·대기자

흔히 정치를 생물같다고 한다. 나름대로 생명력이 있어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심도 마찬가지다. 지지할땐 한없이 따뜻해 보여도 등돌릴땐 금속성 처럼 차갑다. 속된말로 정치인에게 민심의 변덕은 여자의 배신보다도 더 할지도 모른다.

지난주 자치단체장들의 취임식이 끝나고 민선 6기가 시작됐다. 통합청주시 출범식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과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등 국무총리 물망에도 오르는 거물급들의 얼굴도 보였다. 이승훈 시장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충청권 몇몇 기초자치단체장은 취임식을 생략하거나 봉사활동으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힘겨운 선거에서 이기고 무대전면에 오른 자치단체장들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초선 자치단체장의 마음속엔 장미빛 포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4년전인 2010년 6월3일자 신문을 찾아 보았다. 이날은 6.2 지방선거 다음날이다. 1면톱을 장식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 이시종 지사가 지지자들에 둘러쌓여 화환을 목에 걸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다. 3면에는 한범덕 전 청주시장이 부인과 환호하는 모습도 보였다. 두분은 모두 예상을 뒤엎고 쟁쟁한 현역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증을 받았다.

꼭 4년이 지난 현재 한분은 재선에 성공해 취임식을 가졌고 또 한분은 패장(敗將)이 됐다. 선거가 벌써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야인이 된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4년전에 4년후에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했을까.

2006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모 현역 단체장은 선거운동기간 공무원들에게 "단 1표차라도 내가 이긴다. 반드시 살아돌아오겠다"고 강조할 만큼 승리를 자신했다. 심지어 기자들에게 "선거당일까지 승리를 확신했다"고 말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두사람은 모두 재선에 실패했다. 현역단체장은 선거에 유리하지만 막상 낙선하면 상처는 크다. 줄리아 길라드 전호주수상은 2년전 선거에 패한뒤 "쇠망치로 얻어맞은것 처럼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패배의 후유증은 길다.

월드컵축구대회와 지방선거엔 공통점이 있다. 이변이 있다는 점이다. 전혀 승리를 예상하지 못한 나라가 16강과 8강에 오르면 축구팬들은 환호한다. 선거판에도 의외의 인물이 막강한 현역을 꺽고 당선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보는이들로 하여금 짜릿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실력도 있지만 운도 따라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예선리그를 거쳐 본선토너먼트로 올라가면 결국은 전통적인 강팀들이 이긴다. 선거판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정치적인 역량과 노력도 있지만 정치상황에 따라 또는 '바람'의 영향으로 당선되거나 재선가도를 달리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4년을 어떻게 마무리해 주민들의 지지를 받느냐는 것이다.

지역발전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내공이 쌓인 자치단체장을 민심이 떠날리 없다. 자치단체장들은 흔히 비전제시, 행정능력, 경영능력, 도덕성, 청렴성, 민주적 품성등을 두루 갖춘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혁신적인 마인드도 포함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인물은 현실적으로 드물다. 다만 주민들의 눈은 밝다. 두가지만 충족되면 주민들은 대체로 만족한다. 무엇보다 공직윤리가 바로서고 지역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면 지지한다. 웬만한 바람은 무난히 넘긴다. 월드컵에서 준결승, 결승까지 올라가는 팀은 선수들의 개인기와 조직력, 감독의 전술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한다. 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한 자치단체장은 운이 아니라 8년간 자신의 리더십과 비전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들이 취임식에서 선서할때 무엇을 생각했을까. 영광은 짧고 책임은 길다. 로마시대 장군들이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식에는 특이한 전통이 있다. 행진하는 개선장군의 뒤로 노예가 따라 걸으면서 '메멘토모리(Mement Mori)'를 외친다고 한다. 최고의 영예를 받고 신의 경지에 오른듯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죽는 인간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교만과 독선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다.

청주시장은 단 한번도 재선을 허용하지 않았다. 재선에 성공한 타 자치단체장들은 '자만의 ●'에 빠질 수가 있다. 자신에게 사랑을 듬뿍주었던 지역주민들로 부터 4년뒤 쓰라린 배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포풀리즘을 추구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막 임기를 시작하는 자치단체장들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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