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만에 리마인드 웨딩 이기형·정정순 부부
청주우암시니어클럽 한마당 축제서 전통혼례
16년 동안 목욕탕 운영 새벽부터 고생만 시켜
당시 못갔던 신혼여행 가서 미안한 마음 풀 것

23일 청주우암어린이공원에서 결혼 54년만에 리마인드웨딩을 올린 이기형(79)·정정순(73)씨 부부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 신동빈

"오늘 결혼식 올렸으니 다시 신혼으로 돌아가서 더 행복하게 살아야죠."

54년만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많은 사람 앞에서 축하 받으며 결혼식을 올린 게. 그때도 전통혼례였다. 23일 54년만에 리마인드웨딩을 올린 이기형(79)·정정순(73)씨 부부는 이날 다시 부부로 태어났다. 이날 결혼식은 청주우암시니어클럽의 '제9회 우암한마당축제'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웃음만 나와요. 팔순선물을 거하게 받은 기분입니다."(이기형)

"혼례식 전에는 담담했는데 지금은 떨리네요. 결혼때에도 전통혼례를 올려서 잘할줄 알았는데…. 54년 전에는 연지곤지 찍고, 가마도 타고, 축하도 많이 받았었죠."(정정순)

청주시 우암동에 살고 있는 부부는 이기형 할아버지의 어머니의 친구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당시 26살, 20살이었다.

"아내가 참 예뻤지요. 당시에 흑백으로 전통혼례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때 사진 보면 지금도 감회가 새로워요."(이)

지난 결혼생활을 회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딸 둘 낳고 그 다음에 큰 아들 낳았을 때, 온세상을 가진 것처럼 기뻤어요."(정)

"가장 행복했던 일은 큰딸 육군본부에서 결혼시켰을 때, 큰아들 손주 봤을 때요."(이)

30여년간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일했던 이 할아버지는 1990년 청주로 내려왔다. 이후 우암동에서 16년간 만수목욕탕을 운영했다. 지금은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이 할아버지는 우암동 일대 공원관리, 정 할머니는 초등급식 도우미를 하고 있다.

"같이 목욕탕을 하다 보니 하루종일 붙어있었지. 그때만 해도 목욕탕이 잘돼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일했고 어디 가지도 못했죠. 그때 아내를 많이 고생시켜서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이)

서로의 호칭은 모두 "여보". 줄곧 "여보"였단다. 지금까지 54년, 그리고 앞으로 남은 노년을 함께할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남편은 평소 내게 '사랑한다'고 자주 하는데 나는 거의 안해요. 오늘은 꼭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얘기할 거에요."(정)

"젊었을 때에는 내 맘대로 했는데 지금은 부인 말씀(?) 잘 들으며 살아요. 앞으로 남은 인생, 서로 아껴가면서 살아야죠. 54년간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에요."(이)

당시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던 노부부는 이번에는 꼭 다녀올 생각이다.

"이번 결혼기념으로 서천에 가서 바닷바람도 쐬고 생선회도 먹고 싶어요. 아내랑 둘이서."(이)

"결혼여행지는 남편 뜻을 따를 거에요. 결혼기념으로 남편이 옷 한 벌 사주면 받아야죠. 올여름에는 팔찌 받았는데…."(정)

유독 키 차이가 많은 이기형·정정순 부부, 하지만 마음의 눈높이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 /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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