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가을 대표시인' 12명 추천 … 충청출신 나태주·도종환·이근배·함민복 포함
'멀리서 빈다'·'살다가 보면' 등 가을감성 '물씬'

파란 하늘, 맑은 바람, 노랑 빨강 색색의 나뭇잎들. 눈을 들어오는 모든 것이 찬란한 가을이다. 가을은 우리들의 마음마저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 계절이다. 누구라도 시인이 되고싶은 이 아름다운 계절에 차 한잔을 옆에 놓고 시를 마주하는 것은 어떨까.

교보문고는 가을에 읽으면 좋은 시로 '한국 대표 명시선 100'(출판사 시인생각) 중 대표시인 12명을 선정, 그들의 가을 시를 추천했다. 김승현의 '가을의 기도', 나태주의 '멀리서 빈다', 도종환의 '담쟁이',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강',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안도현의 '파꽃', 유치환의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이근배의 '살다가 보면', 이해인의 '나를 키우는 말', 정호승의 '갈대', 함민복의 '가을'이 그것이다. 이중 충청지역 시인 나태주, 도종환, 이근배, 함민복 4명의 시집을 소개한다.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먼저 나태주 시인의 시집 '멀리서 빈다'는 시집 32권과 산문집 10여권, 동화집을 펴내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쳐온 나 시인의 시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풀꽃',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미소 사이로',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등의 시들을 저자가 직접 가려 엮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있는지, 아직은 지상에서 숨을 쉬며 사는지 묻고 싶은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나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 출생으로 공주사범대를 졸업한 뒤, 43년간 초등학교 교직에 몸 담았다. 흙의 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 문학상, 시와 시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공주문화원장으로 있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시집 '담쟁이'는 접시꽃 당신으로 밀리언셀러 시인으로 크게 사랑받고 있는 도 시인이 30년간 발표한 시 가운데 가장 아끼는 50편을 자선해 엮은 시집이다. '저 가을 구름 바람 위로',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시든 국화',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등의 시를 통해 가난에서 싹이 트고, 아픔에서 다시 시작했던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1954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한 도 시인은 서정적인 시어로 진솔한 삶을 녹여내 아름다움과 절실한 감동을 더해주고 있으며, 신동엽 창작 기금과 민족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살다가 보면 /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이근배 시인의 시집 '살다가 보면'은 한국문학작가상, 중앙시조대상, 만해대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며 독창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이 시인의 시를 '서해안', '들길에서', '한강은 솟아오른다' 등 5부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다. 1960년 충남 당진 출생인 이 시인은 시조와 시를 함께 써오며 한국적인 것, 전통적 가치를 꾸준히 보존하고 그것들을 연마해 나가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을 /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함민복 시인의 시집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는 그의 대표시 49편을 엮은 것으로 가난의 의미를 소재로 해 눈물처럼 짠 작품들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편을 가르지 않고 경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가을', '마흔번째 봄', '추억을 묻다', '가난을 추억함' 등의 시는 때론 독자들에게 아픈 마음의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함 시인은 1962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재학중 계간 '세계의 문학'에 시 '성선설'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 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 송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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