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KT에 다니던 고교동창 두명이 얼마전 고민끝에 회사를 떠났다. 20여년간 회사의 부침과 모진 풍파에도 굿굿하게 자리를 지키며 회사성장에 기여했으나 더이상 버틸수가 없었다. 신임 회장의 강력한 개혁드라이브 때문이다. 황창규 회장이 KT에 발을 들여놓았을때 회사는 위기였다. 지난해 수천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뒤 3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왔다.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약속했던 배당도 취소해 주주 신뢰도 크게 잃었다. 황 회장은 이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등을 통해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4분기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황창규 효과'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삼성전자 사장 출신이다.

요즘 삼성출신이 잘나가고 있다. 주력기업인 삼성전자는 애플과 중국의 IT기업에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못하고 있지만 삼성 인재들을 부르는곳은 더욱 많아졌다. 삼성출신 퇴직임원에 대한 중견기업의 영입러시는 이제 뉴스도 아니다.

이번엔 국가 혁신에도 삼성맨이 투입됐다. 인사혁신처장에 이근면 전 삼성광통신 고문이 발탁됐다. 예전에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은적이 있지만 민간기업의 인사 전문가가 공직개혁을 주도하는 자리에 앉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30년 넘게 인사관련업무를 맡으며 글로벌 기업 삼성 인사시스템의 뼈대를 만든 장본인이다. 인사난맥상으로 정권초기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던 청와대 입장에선 '히든카드'라고 할 수 있다. 공직자 출신은 관료주의와 온정주의를 뿌리뽑기엔 한계가 있다. 그는 대선때 박근혜 캠프에도 몸담은적이 있다. 청와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인사혁신처에 혁신이란 이름을 붙은 이유가 있을것"이라며 "국민의 눈높이 수준까지 혁신하고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매우 믿음직스러운 말이지만 실행할수 있는지는 별개다. '변화와 혁신'은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실천하긴 힘든 말이기도 하다. 7년전 삼성전자 부장급 간부가 경기도청 서기관급 공무원이 됐다. 물론 정식 임용된 것은 아니고 2년간 한시적으로 투자유치 자문관으로 영입됐다. 당시 김문수 지사는 글로벌기업에서 쌓은 경험과 경영노하우를 높이 사 영입한 것이다. 당시 대기업 간부를 민간 전문가로 영입한 전국 첫사례라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면서 '삼성맨, 공무원 체험기'를 펴냈다. 그는 "공무원은 일처리를 치밀하게 하기 때문에 민간인이 갖고 있는 실용성만 갖춘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치켜세운뒤 "공무원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변화해야 하고 조직을 유연성있게 운영해야 하며 직원간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근무환경을 개선해줘야 한다"고 썼다.

구구절절 옳은말이지만 외부인사의 따끔한 충고가 먹혀들기엔 공무원 조직은 배타적이다. 체질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고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리더의 혁신적인 마인드가 통용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공무원들 조차 이근면 처장의 등장에 '우려와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긴장감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삼성은 좋은사람을 양성하는 세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거기엔 오직 실력만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공직사회는 기업과 문화가 다르다. 오너가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는 기업은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지만 국가경영은 다르다. 오랜 기자생활을 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관료적인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선 청와대부터 변해야 한다. 혁신을 부르짓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공공기관장에 임명된 친박계 인사가 50여명에 달한다. 수백명에 달하는 임원과 사외이사 인사도 청와대가 좌지우지한다. 기득권을 내려놓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향후 3년남은 현 정권내에서 인사개혁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것인가. 우리나라 풍토에서 정권이 바뀌면 개혁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공직사회는 대통령 임기내에 바싹 엎드린채 좌고우면 하게 된다.

삼성의 조직문화는 옷차림부터 다르다. "서초동에서 위아래 같은색의 양복을 입은 사람은 절대 삼성직원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옷에서도 혁신을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튀는 차림'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파격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그게 라이벌 애플과 다른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패는 삼성맨의 인사개혁에 달렸다. 과연 공직사회가 변할수 있을지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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