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논설실장·대기자

경기도 평택 미군부대에는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헬기조종사가 된 24세된 한국계 여군 '세라 전'이 근무하고 있다. 한창 멋부릴 나이의 젊은 여군이 막강한 화력을 갖추고 있어 '탱크킬러'라고 불리는 아파치헬기 조종사라는 점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라 전'이 잔혹한 테러국가인 IS(이슬람국가)의 근거지인 이라크나 시리아 전선에 투입되고 싶다고 말한 인터뷰가 얼마전 신문에 실렸다. 그는 "실전경험없이 전역한다면 저 자신에게 실망할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전투에 나서는 것은 "국가를 위해 복무하겠다고 선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군인으로서 책임감과 자부심이 엿보였다.

하지만 내가 더 주목한 것은 그 다음말이었다. 그는 "미국 군인은 적지않은 봉급을 받는다. 해외 파견수당도 있고 또 많은 기회와 혜택이 주어지며 무엇보다 국민이 우리를 보면 "생큐 포 유어 서비스"라고 감사해 한다. 이런 대접은 나라가 요구했을때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기에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병제인 미군과 단순비교할 순 없지만 군인에게 애국심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20대의 가장 소중한 시간에 '국방부 시계는 물구나무 서도 간다'는 말이 나올만큼 힘겨운 통과의례를 겪는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가 현역 복무를 이행한 병사가 취업할 때 '복무보상점'을 부여하고 복무 기간을 대학 학점으로 인정한다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을때 매서운 칼바람과 세찬 눈보라를 맞으며 서해안에서 해병대로 복무중인 아들을 떠올렸다. 아들에겐 희소식이 되겠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폐지된 군가산점 제도는 '해묵은 현안'이자 '뜨거운 쟁점'이기 때문이다.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제도라는 여성단체의 원론적인 반대도 충분히 이해할 순 있지만 최근 몇년간 우리나라의 병영환경은 급속히 변했다. 지난 6월 동료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임 병장 총기난동 사건은 예고편이었다. 28사단 윤일병 구타사망사건도 빙산의 일각이다. 끊이지않는 병영내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가혹행위는 땅속깊이 잠복해있던 대한민국 군대문화의 총체적인 치부였다. 연쇄적으로 드러난 군대의 '민낮'은 우리사회를 소용돌이처럼 들끓게 했다. 해외토픽에도 실리는 것은 물론 북한방송으로부터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적보다 더 무서운것이 아군'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전우애'가 사라지고 기강이 허물어졌다면 막상 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에는 상상하기 싫은 상황이 현실이 될 수가 있다.

지난 8월 한동안 모병제가 우리사회의 이슈가 된것은 병영문화가 변하지 않는다면 제 2의 임병장, 윤일병 사건이 터질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모병제 청원 성명운동'도 전개되기도 했다. 모병제의 핵심은 직업군인을 근간으로 '소수정예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적으로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예산은 그렇다치더라도 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남북대치상황에서 모병제는 현실적으로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고 급여를 화끈하게 올려줄 수도 없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만의 사병월급은 94만원(사회가산점)이다. 이스라엘처럼 더 많이(150만원·대학등록금전액지원) 주는 나라도 있다. 해병대 병장인 아들은 12만원 받고 있다. 20개월 남짓한 군복무는 국가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국가는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

지난 8월 기자는 모병제를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면 군인들의 사기를 올려줄 수 있는 보상방안은 마련해야 한다는 칼럼을 썼다. 독일도 2011년 3월 징병제를 폐지하기 전까지 전역자들에게 특전을 부여했다. 여론도 군가산점제도 도입에 대해 우호적이다. 2009년 12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선 78.7%(반대 21.3%)가, SBS이슈폴이 2008년 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89%(반대 10%)가 찬성했다. 병역혁신위의 복무보상점 도입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군가산점은 혈기왕성하고 지적호기심이 충만한 청춘들이 군대라는 엄격한 규율속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일반기업까지 확대돼야 한다. 보상이 절대적 가치는 아니지만 용감한 여군 '세라 전' 말대로 전역자에 대한 기회와 혜택이 없이 강군을 만드는것은 至難(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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