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이종수 시인·흥덕문화의집 관장

아침 출근길 버스를 탄다. 방학이 되어도 만원버스인 까닭은 이른바 황금노선이기 때문. 출입문 계단까지 사람들로 꽉 찼다. 버스 기사는 뒷차를 타라며 그냥 출발해 버린다. 다음 차도 역시 만원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가까스로 교통카드를 찍고 뒷문으로 탄다. 어느 정도 끼어들 틈이 있으면 비집고 들어서겠지만 통로에 버티고 선 사람들은 요지부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자 쪽으로 바짝 몸을 붙여가며 길을 열어주지만 어떤 사람은 가방까지 메고서도 비껴줄 생각이 없는지 단단히 버티고 섰다. 키가 작은 나로서는 밀려드는 뒷 사람을 의식하며 엉거주춤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뒤쪽으로 가야 숨통이 트기 때문에 다음 정거장에 내릴 사람이 누르는 벨을 의식하며 틈을 노린다. 버스 기사가 자꾸 뒤쪽에는 여유가 있으니 조금씩만 들어가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움직일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예비군 훈련장의 전역 군인들처럼 말이 안 통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누가 뭐라 하는 소리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속성 때문일까. 어떻게든 버스를 타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앉아있든 서 있든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는 시급한 문제가 아니니 버스 안은 시큰둥하면서 냉랭한 침묵으로 만원이다.

아주 오래 전에 강수욕장이 있던 신탄진을 오가던 버스 생각이 난다. 여름철이라 지금의 만원버스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콩나물 시루가 따로 없었는데, 거기에 사람을 더 태우는 방법이 있었더랬다. 조금씩 뒤로 밀착해달라는 기사의 요구에 사람들이 응하지 않자 기사는 버스를 느닷없이 출발시켰다가 급정거를 했고, 사람들이 주유소 앞 바람풍선마냥 쏠리는 사이 빈 공간에다 사람들을 태우던. 그것도 모자라 뒤쪽에 있는 창문을 열어 태우기도 하던, 지금이야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지만 어떻게든 태우고 한 번에 가려면 그런 일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기사가 그날처럼 그 기술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지만 모기만한 소리로 '거, 좀 들어갑시다' 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만다.

속으로 긴 호흡을 하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본다. 다닥다닥 붙은 좌석 두 줄 사이로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려면 조금은 욕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가방이 걸리적거리고 어깨와 엉덩이가 부딪치는 일이라서 예민할 수밖에 없다. 역시 사람들은 내리는 문을 경계로 앞쪽에 쏠려 있다. 몇 번의 실랑이를 벌이며 내리는 문을 넘어서면 뒤쪽은 그나마 널널하다. 용케도 맨 뒷자리에서도 가운데나 창 안쪽의 빈자리를 만날 수도 있다. 두툼한 외투와 가방만으로도 좁은 좌석 사이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꽉 찬다. 그런 북새통에서도 두 손을 뽑아들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부동자세로 멀뚱하게 앉아 옆의 기척만 보면 열심히 카톡을 하는 모양이 꼭 손뜨개질을 하는 것만 같다. 두 손의 엄지와 검지만을 부지런히 움직여 간단한 문장을 주고받는 것이 목도리 하나쯤은 금방 뜨고 말 것만 같다. 서로의 일거수 일투족이 궁금한지 어디를 지나고 어디서 내릴 것인지, 밥은 먹었는지 따위를 매듭으로 서로에게 가상의 목도리를 짜주는 것이거니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앞 사람들의 귀로 흘러들어가는 노래를 가늠해 본다. 저마다 다른 출근길, 일터에서의 하루가 잘 풀리기만을 바는 것도 벌써 직장에 도착해 까다로운 상사와 맞대면하고 있을 아내의 하루 또한 만원버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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