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

길을 간다. 걸인을 만난다. 적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 생각이 스친다. 적선을 하면 걸인의 자활의지를 더 약화시킬 같다. 하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불편한 마음도 잠시, 이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 국가나 당국이 복지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적선보다는 피켓팅이나 구호를 외치며 직접 거리나 광장으로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아니지, 일단 쉼터로 보내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지.

# 가치판단이 쉽지 않은 사회현상

뉴스를 본다.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상치 않다는데,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인도적 지원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니 그 동안 북한의 소행이 괘씸하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우리에게 포격을 가하질 않나, 최근에는 경제적 지원의 대가가 무력시위로 돌아오질 않나,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질 않나, 이거 전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의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말하는 상호호혜주의(相好互惠主義) 원칙을 고수해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의 흡연율이 증가하고 있다. 흡연을 방치하면 학교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는데, 이를 강력히 처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느 학교에서는 흡연 세 번이면 권고전학인데, 적발할 때마다 무조건 강제전학을 시키니 학교가 깨끗해졌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교육적으로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 한쪽에서는 밀어내고 인근 학교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밀려온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서로 핑퐁 게임하는 이런 학교현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흡연하는 교사들도 대부분 고교시절에 담배를 피웠다는데.

이런 문제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작은 고민들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이런 문제들은 간단히 상식론(常識論)으로 해결한다. 걸인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니, 사회구조의 문제니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에게 가장 시급한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면 된다. 그것이 상식이다. 대북문제에 이념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동포가 당장 굶어 죽는데 살려 놓고 봐야 되지 않겠는가. 흡연을 하는 학생들에게 퇴출보다는 교사들의 교육적 역량을 기대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것이 훨씬 교육에 부합되지 않은가.

이런 상식론을 터득하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지나칠 정도로 문제를 확대시켜 고민했던 탓이다. 동전 몇 닢을 적선하면서 어떤 것이 좋은지를 수없이 되물었다. 북한의 태도를 보면서 어떻게 통일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를 고민했다. 학교 밖으로 밀려나는 학생들을 보면서 경직된 교육현장의 모습도 같이 보았다. 이런 과정에서 내린 결론이 바로 필자만의 상식론이었다. 예컨대 걸인의 자활의지를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우선 따뜻한 커피한잔을 건 내는 정도면 된다. 최선의 방법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최선이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북한 문제도,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다.

# 상식은 판단의 기초적 준거

일상에서 상식은 훌륭한 판단의 준거가 될 수 있다. 때론 이념, 규칙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좋은 가치로 기능한다. 굶주린 사람에게 동전 몇 닢은 허기를 매워줄 수 있는 식량이 될 수 있다. 북한 동포들에게 남한의 인도적 지원은 희망의 끈이 된다. 잘못한 학생에게 교사의 용서와 관용을 담은 말 한 마디는 그 자체가 훌륭한 교육이다. 상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판단이 어려운 문제는 간단히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로 풀면 된다. 여기서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지나친 온정주의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온정주의라면 오케이, 한병선은 정치적 온정주의가 아닌 상식의 힘을 믿으니까. 상식너머의 본질과 구조의 문제에도 여전히 관심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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