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감독 김성호)을 제작·배급한 삼거리픽쳐스의 엄용훈 대표가 국내 영화계의 대기업 수직계열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낸 호소문에서 "부디 대통령님께 바라옵건데, 한국 영화 산업의 대기업 수직계열화에 따른 몰아주기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서, 법으로 동일 계열기업 간에 배급과 상영을 엄격히 분리시키고, 상영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합리적으로 세워서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적었다.

앞서 엄 대표는 '개훔방'의 흥행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리틀빅픽쳐스 대표직 등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동시에 대형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을 비판하며 주목 받았다.

지난해 12월31일 개봉한 '개훔방'은 미국 작가 바바라 오코너의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으나 현저하게 적은 상영관을 얻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엄 대표는 "개봉 첫 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개봉관만을 확보해 출발했다"면서 "그 다음 주부터는 조조 시간대와 심야 시간대가 주를 이루는 상영시간을 배정 받아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아이들과 함께 볼 가족영화가 상영관을 찾아서 지역의 경계를 넘어 다녀야 하는 매우 안타까운 상항을 맞게 됐다"고 토로했다. 지금은 전국에 10여 개 극장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으며, 그나마 대기업 극장 체인점에선 거의 사라져버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극장 측에서는 예매율과 좌석점유율이 낮아서 관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고 했다. 엄 대표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공정한 룰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면서 "자사계열 배급 영화에 대해서는 영화 예매 오픈시기를 대부분 2주 전에 열어주지만, 중소배급사 영화의 경우에는 개봉일 1주일 이내로 임박해서야 열어줬다"고 지적했다.

"예매 오픈 극장의 수도 지극히 작은 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예매율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후 상영관이 조조 및 심야 시간대 중심으로 배정을 함으로서 좌석점유율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 임에도 예매율과 좌석점유율만을 거론하고 개봉관을 줄이는 기가 막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와 함께 앞서 박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규제개혁 점검회의에 참석한 영화감독 윤제균이 국내 영화시장은 투자부터 제작·배급·상영까지 한 기업에서 이뤄지는 수직계열화로 CJ, 롯데, 메가박스 등 대기업이 전체 시장 대부분을 독식하는 독과점 현상의 문제점이 있다는 것과 이 구조 속에서는 영세한 제작사가 공정한 소득분배에서 제외되는 소득 불균형 문제 등을 지적한 것을 복기했다.

"대통령님께서도 '양극화에 시달리는 영화 업체들에게는 (수직계열화 문제가)규제 이상의 엄청난 규제나 마찬가지'라며 '이런 조치들에 대한 실천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공감과 강력한 의지를 관계부처에 주문하신 바 있으셨다"면서 "이에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한국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에 대해 '대기업이 중소 독립 제작사의 시장참여를 박탈하는 행위를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밝히게 됐다"고 다시 한번 거론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의해 지난해 12월 CJ CGV와 롯데시네마의 자사계열 배급사 차별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55억 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조치를 했고, 당시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 그 조치에도 불구하고 상영관의 독과점 행태는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엄 대표는 "이번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사태는 한국영화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놓고 있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계는 지독한 쏠림현상과 대기업 배급사에 줄서기를 해야 영화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 중 가장 심각한 양극화 상황으로 전개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삼거리픽쳐스는 대기업 주도의 영화 투자배급 환경에 대응하고자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소속 영화제작자들이 지난 2013년 뭉쳐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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