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 한인섭 정치부장 겸 부국장

호남권과 대전권이 KTX 호남고속철 서대전역 경유·정차 여부를 놓고 마치 '아귀다툼' 하듯 연일 난리다. 충북 역시 서대전역 경유 방침이 결정되면 호남고속철 분기역 오송역 위상이 추락될 게 뻔해 균형발전 지방분권 충북본부 등 시민단체들이 3일 오송역에서 대규모 집회를 통해 경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호남과 대전권 지자체와 지방의회, 정치권, 시민단체들은 서대전역 경유 관철과 저지운동에 사력을 다하는 양상이다. 공교롭게 호남선 목포역과 익산역, 서대전역, 오송역에서 잇따라 진행된 결의대회 형태의 집회에서는 정차역마다 서로 이해관계와 주장이 분출되고 있다.

KTX 호남고속철 정차역은 건립 목적과 이용자 편의에 부합한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점을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지역별 이해관계가 다른 사안이라 '느슨한 원칙'을 가장 경계해야하는 쪽은 국토교통부이다. 그러나 마치 정치권이 힘겨루기를 해서라도 결론을 내주면 결정하겠다는 식의 국토부 태도 탓에 문제가 더욱 꼬이는 것 아닌가 싶다.

이런 분위기가 읽혀지다보니 정치적 책임과 '손익'이 가장 분명한 단체장들과 정치인들은 '서대전역 경유' 문제에 올인할 수 밖에 없다. 3일 송하진 전북지사와 이낙연 전남지사, 윤창현 광주시장, 설문식 충북 정무부지사는 서승환 국토부 장관을 만나 경유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항의 방문을 겸해 이뤄진 면담에서 호남권 단체장들은 지역민들의 '분노'를 전달하고, 백지화를 요구했다고 한다. 호남권 단체장들은 권선택 대전시장이 이 문제를 협의하자며 제안한 '연석회의'를 보란듯 거부한 채 서 장관을 만났다. 권 시장 역시 같은날 브리핑을 통해 '경유'를 관철하겠다는 거듭된 입장을 밝혔다.

호남과 대전, 충북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지역마다 절실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호남권은 서대전역 경유 방침이 관철될 경우 서울 용산역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133분만에 도착할 수 있는 구간 소요시간이 45분이 추가 소요된다. 8조원을 들인 호남철이 '저속철'로 추락할 것이라는 명분도 그렇지만, 같은 요금 내고 45분을 허비할 이용 당사자들이 가만 있을리 없다. 충북 역시 경부고속철 정차역과 호남철 분기역을 애써 유치해 오송을 미래철도 중심지이자 세종시 관문역이라는 위상을 이끌어 내려는 데 '서대전 경유'가 현실화 될 경우 모양새는 뒤틀릴 수 밖에 없어 선택 여지가 없다. 대전 역시 지역간 '상생 방안 아니냐'는 명분을 들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가장 다급해야할 국토부는 오히려 느긋해 보인다. 오는 4월 개통 예정인 호남철 정차역 문제는 1개월 전에만 결정하면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지역여론을 종합적으로 청취한 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호남철 서대전역 경유 문제는 이미 지역갈등을 넘어 지역감정 대결 양상이 됐다. 결과에 따라 더 큰 후유증도 예상되는 사안이다.

국토부 일정대로는 앞으로 한달 이상 이런 상황이 지속돼야 한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만해도 호남철은 경부철과 함께 서울과 충청, 영호남을 'Y축'으로 이어 반나절 생활권을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았다. 그러나 요즘 돌아가는 양상은 정반대이다. 호남과 대전권, 충북이 두패, 세패로 나뉘어 싸울 판이다. '원칙'이든, '상생'이든 국토부가 명분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 보여 더 꼬일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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