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광태 농협 안성교육원 교수

최근 우리사회 갑을 논쟁이 뜨겁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0명 중 95명은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갑질'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5%의 응답자는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갑질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데 매우 동의(44%)하거나 동의하는 편(51%)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 우리 국민들은 한국에서 갑질이 유독 심각하고 사회 모든 계층에 만연한 고질적 병폐로 실감하고 있다.

갑질이 위험한 것은 무엇보다 을의 분노가 공동체의 근본을 위협하고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의 사회질서를 흔드는 갑질 논란을 풀 수 있는 해법을 고민해 보자.

먼저, 갑을관계란 확고부동하게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라는 점을 인식하자.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있을 수 없다.

둘째, 나를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마음이 필요하다. 만약 자신이 을의 입장에 선다면 갑이 어떻게 해주길 바랄 것인가를 자문하고 성찰해 보자. 분명 따뜻한 시선과 말 한마디 그리고 배려를 기대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셋째,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한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어 보자. 촌락으로 시작한 로마는 정복사업으로 권역이 확장되면서 거대 제국으로 변모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로마가 세계의 패권과 함께 장기간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피지배 민족들과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넷째,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다. 사회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과거 공동체 중심의 농촌사회와는 달리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여유가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시대의 고금을 넘어 지금도 유럽사회의 근간을 유지하고 묶어주는 시대정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 우리 선조에게서도 이런 훌륭한 모습은 얼마든 찾아볼 수 있다. 경주 최부잣집 사례와 구례 운조루 정신이 그것이다.

구례의 고택 운조루에는 유명한 뒤주가 있다. 뒤주에는 타인도 능히 열수 있다는 의미의 '타인능해(他人能解)' 라는 네 글자가 쓰여 있다. 뜻 그대로 형편이 어려운 마을 사람은 누구라도 와서 뒤주 속 쌀을 퍼갈 수 있었다. 일 년 수확 중 20퍼센트의 쌀을 뒤주에 채워 넣는데 만일 뒤주가 비워 있으면 하인들이 꾸중을 들었다. 또한 운조루의 굴뚝에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찾을 수 있다.

이 집은 다른 집에 비해서 굴뚝이 아주 낮다.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솔솔 잘 빠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낮게 설치한 것은 밥하는 연기가 높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밥을 굶고 있는 사람들이 부잣집에서 올라가는 굴뚝 연기를 보면 자연히 증오와 질투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자나 권력층들이 살던 우리나라 고택 대부분이 민란이나 전쟁에 의해 거의 불탔다. 하지만 동학과 여순 반란사건, 한국전쟁의 치열한 현장인 지리산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운조루 고택은 온전했다. 마을 사람들 스스로 지켰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주인마님의 대상은 더불어 함께 살기였다.

이처럼 사람은 받으면 주려고 한다. 상호성의 법칙은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면 결코 공짜가 아니라 상대도 그에 상응하는 호의로 갚아야 할 빚으로 받아들인다.

혼자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수 있다. 결국 현재의 갑과 을 모두는 사업의 협력 파트너이자 존중할 동반자이며 공존할 운명공동체 임을 명심하자. 나아가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부단히 가꾸어 나가는 고마운 존재일 따름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행복하게 해 주자. 그러면 멀리 있던 사람들도 당신을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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