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사람들은 철학의 종말과 인문학의 쇠퇴를 유행가사처럼 읊조린다. 자본주의와 성장지상주의에 밀려 사유의 공간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은 저잣거리를 방황하며 시리고 아픈 일상을 토해낸다. 그래서 마르틴 하이데거는 <숲길>이라는 책에서 우리시대를 궁핍한 시대라고 했다. 사라져버린 신의 시대, 존재의 빛을 찾을 수 없는 밤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에 대한 경탄, 사랑에 대한 열망,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망을 만날 수 있는 사유의 숲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비겁하고 용기 없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시인도 있다. 김지하는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이라며 시인들에게 펜을 들자고 했다.

김수영은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고 말했다. 궁핍한 시대에 사유의 숲에서 책을 읽으며 지적 자양분을 쌓고 정의를 위해 행동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 <여유당전서> 등 평생 500권이 넘는 책을 썼다. 문학에서부터 철학, 음악, 경제, 지리, 의학 등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많은 책을 쓴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가 유배지에서 쓴 책이 있는데 바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다. 그는 이 책에서 "너희는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 너희가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을 것이며, 너희가 독서하는 것이 곧 내 목숨을 살려주는 일"이라며 유배생활의 황망함을 이야기했다. 미래가 불확실할지언정 희망을 버리면 안된다며 끝없이 책을 읽고 꿈을 펼치기 위해 담금질 할 것을 강조했다.

중국의 지도자들도 모두 책속에서 지혜를 얻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공자는 죽기 직전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진시황, 조조, 당 태조, 강희제, 모택동, 등소평 등도 필요한 모든 것을 책에서 얻고 고난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책은 정보의 바다일 뿐 아니라 창조의 길이며 사유의 숲이다. 세상에서 가장 듬직하고 정직한 벗이기도 하고 내 삶의 마디와 마디를 키우는 점프의 보물상자이기도 한 것이다.

크리에이터 이어령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그의 어머니는 임신중에도 매일같이 책을 읽었고 태어나서도 성장기 내내 책을 옆에 놓고 읽어주고 또 읽어 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당신이 지금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이자, 행동하는 크리에이터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고,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에서는 태아의 10달이 생후 10년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사색과 책읽기는 최고의 교육임에 틀림없다.

청주에는 100여 개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이중 산남동 일원에만 10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대부분이 주민들 스스로가 일구었으며, 독서와 문화체험과 생태보전 등의 다양한 일을 전개하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개발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했던 두꺼비 집단 서직지를 살려내지 않았던가.

두꺼비는 지구상의 생명 중에서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온 몸으로 실천하는 최고의 집단이다. 두꺼비와 인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더불어 함께 누린다는 것을 의미하며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곳은 마땅히 생명의 마을, 책의 마을, 세살 마을로 가꾸어야 한다. 두꺼비가 아픔을 겪지 않는 생명의 마을을 만들고 작은도서관과 문화예술이 끝없이 펼쳐지는 세계 최고의 책마을로 만들면 좋겠다. 거리와 공원과 건물마다 문자의 숲, 책의 숲, 디자인의 숲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은 마을로 발전시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마을이 되면 좋겠다. 천지에 꽃피는 소리로 가득한 마을, 생명의 합창이 끝없이 울려 퍼지는 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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