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홍진 대신증권 본점 부장

빚쟁이 그리스가 목숨을 4개월 연장했다. 이것은 연장이지 결말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지난 1월 25일 그리스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된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치프라스 총리 앞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리스의 신임 재무장관 바루바키스는, 긴축정책으로 지친 그리스인들의 열망을 등에 업고 맏형 독일을 비롯해 주요 채권국가들을 개별적으로 상대했다. 일단 유로존 국가들은 방금 선거를 이기고 의기양양하게 등장한 급진세력에게 약간의 선물을 주어야 했다. 이미 채권국가들은 그리스가 어떤 나라인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충당금을 쌓는 등 상당한 대비도 했다. 이제 공은 그리스로 넘어갔다. 과연 앞으로 그리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스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한다면 그리스보다 더 큰 경제규모의 이탈리아 등이 가만히 있을까? 그렇다면 유로존은 무사할까? 그리고 탈퇴한 그리스가 유럽연합을 떠나 러시아나 중국과 가까워 진다면?

그리스가 마지막 카드인 유로존 탈퇴를 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그렇다고 그리스 상황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우선 그리스 내부적으로 살펴보자. 국가적인 위기를 앞에 두고 사회적 합의와 통합이 될 지 의문이다. 새로운 치프라스 정부가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또 다시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미 몇 년간의 긴축정책에 시달린 국민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 있다.

외부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리스는 유로존 탄생에서부터 취약한 경제구조로 인해 불리한 점이 많다. 19개 나라로 이루어진 유로존은 맹주인 독일과 같은 나라에는 유리하나,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는 불리하다. 억지로 환율을 통합해 놓았기 때문에 경제가 취약한 나라들은 경제 현실에 비해 고평가된 환율을 감당해야 된다. 경제가 나쁘면 환율을 떨어뜨려 자동적으로 조절하게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같은 유로 통화를 쓰다 보니 자국에 맞는 정책 수행이 불가능하다. 구제금융 조건도 녹록하지 않다. 매년 이자를 적게 내는 대신 만기가 길다. 최장 30년인 경우도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언뜻 보면 채무국인 그리스를 많이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그리스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30년간 구제금융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 다행히 조기에 상환하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번 돈을 수십 년간 고스란히 채권국가에 이자와 원금 상환에 쏟아 부어야 하는 꼴이다. 갚아야 할 돈도 일년 국내총생산(GDP)의 1.75배에 달한다.

그리스가 과도한 빚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 여섯 번째다. 그리스는 19세기 초에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독립을 했는데, 독립 이후 다섯 번이나 국가 디폴트를 경험했고, 그 기간은 독립 이후 역사의 절반이나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찬란한 문명을 생각하면 참 수치스런 기록이다.

이제 그리스로서는 방법이 없다. 부채를 대폭 경감 받든지, 아니면 경제를 활성화하거나 긴축을 통해 빚을 갚는 것 밖에 없다. 전자는 이미 몇 년 전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절반 가까이 부채경감을 받았다. 채권국가들이 들어주기 만무하다. 외부변수가 호전되어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부적으로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의 안정과 내부 개혁이 시급하다.

내부개혁 과정에서 정책을 놓고 불화가 심해질 전망이다. 특히 기득권층의 반발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개혁의 승패가 갈린다. 치프라스 총리가 좌파이기 때문에 상위층에게 상대적으로 부담을 주는 정책이 취해질 것이다. 상위층들의 이탈과 반발 무마가 관건이다. 아마 이를 지켜보는 그리스인들은 화려한 그리스문명을 떠올리며, 제우스의 신탁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대 그리스 시대가 아닌 것이 유감이다. 그리스의 운명은 온전히 그리스인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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