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아트센터 2015 기획초대전-황인기 '여행 후, 여행 전(A journey after, a journey before)'

동양 고전산수화나 주변 자연풍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고 있는 한국현대미술의 대표작가, 황인기(63·성균관대 교수).

청주 우민아트센터(관장 이용미)가 개관 4주년을 맞아 2015 기획초대전-황인기 '여행 후, 여행 전(A journey after, a journey before)'을 마련, 10일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6월 13일까지 계속되며, 전시 오픈식은 10일 오후 5시에 열린다.

황인기 작가는 1951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미술대학과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했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를 거쳐 2011년 아르코미술관 대표작가에 선정되는 등 한국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이번 전시는 크게 두가지의 테마로 진행된다. 하나는 그동안 지속해 왔던 전통산수화를 통해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이동시켜 자연과 도시, 정신과 물질에 대한 공존을 보여주는 '디지털 산수' 계열의 회화작업이고, 또 하나는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 설치작업 이후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동시대 대중·소비문화의 가치를 시간성으로 환유하며 통시적 시간성을 제시하는 설치작품이다.

우민아트센터 전시장 벽면을 시원하게 채우고 있는 '디지털 산수' 작품들은 전통산수화의 한 부분을 깨진 이미지로 픽셀화시켜서 인조 큐빅이나 레고, 실리콘 등 지극히 현대산업의 산물인 재료들을 덧붙여 그 풍경을 재현한 작업이다.

'오래된 바람-산수', '오래된 바람-금강내산' 등의 작품들은 전통산수화에서 차용한 이미지에 현대적 오브제를 덧붙였고, '여행 후-산', '여행 후-숲', '여행 후- 강', '여행 후-석양' 등은 최근 한달간의 머물렀던 뉴질랜드 풍경을 담은 신작이다.

"나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이외에 그보다 훨씬 더 깊게 다가온 것이 넓은 하늘, 깊은 물, 즉 자연이었습니다. 옛 그림을 마주하면서 그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꼈죠. 그렇게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 그림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어요. 디지털 산수 작품들은 그 사람들이 오늘을 살았다면 나와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된 작업들입니다."

청년시절, 서울대 공대에 진학했다가 "돈벌이를 추구하는 삶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고, 그 때 마음에 와 닿은 것이 미술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세속화된 삶에서 잊혀져 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틀, 즉 세상에 있어 불변의 가치로서의 자연에 접근하면서 시대가 바라본 자연을 '지금, 여기'의 현재 시선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자연의 공감인 것이다.


이번 전시의 또다른 테마는 전시장 한켠의 암실 속에 자리잡은 설치작업이다. 그는 이들 설치작업에 대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지난 2011년부터 해오던 '내일이면 어제가 될 오늘'의 작업 줄기가 뻗어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에 대한 사유가 깊어진다는 그의 암실속 설치작업들은 '거처를 옮기면서 여기 저기 떠다닌다는 의미', 즉 무(無), 멸(滅)을 향해 가는 삶에 대한 고찰이다.

"충주에서 태어나 10살 때 서울의 아주 가난한 변두리로 이사를 했어요. 조그만 창고에서 온 식구가 살았죠. 부유함에서 가난함으로, 극에서 극으로 삶의 방식이 옮겨졌던거죠. 그 때의 불확실성, 변동성, 그것들이 이번 암실 설치작업의 빌미, 소스가 되었습니다."

깜깜한 암실속의 4개의 비닐설치작업 안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부패되고 소멸돼 가는 나무가지, 명품백 등의 오브제가 들어있다. 빛의 켜짐과 꺼짐, 암흑속에서 번쩍이는 초록색 섬광, 황 작가 본인이 직접 녹음한 동물행동학자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의 저서 '현대 문명이 범한 여덟가지 죄악'의 요약문이 사운드 나레이션으로 반복 등장한다. 이를 통해 그는 지극히 인간중심으로 이루어진 근대적 사고방식과 선형적 논리로 일관된 사고체계에 대한 반성을 이끌고 있다. '죽으면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그야말로 궁극적인 무(無)로 환원되는 소실로 향해가는 삶의 여정을 전하고 있다.

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10살 때 서울로 이사했고, 이후 15년을 서울에서, 10년을 미국 뉴욕에서, 다시 10년을 서울에서 살았다. 그리고 현재는 충북 옥천 동이면 석탄리에 살고 있다. 1996년 서울과 경주에서 아내와 각각 맞벌이 생활을 하게 되자 중간지점으로 선택한 곳이 옥천이다. 누님이 옥천 안내중학교 영어교사를 지내기도 해 친근감이 있기도 했다고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10년, 15년 단위로 거처를 옮기며 그가 늘 관심을 둔 것은 '자연'이다. "그림은 살면서 나오고 사는 데에서 나온다"는 그는 20년째 살고 있는 옥천이 '이젠 옮길 수도 없고, 옮기고 싶지도 않은' 자신의 영원한 거처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장 설치작업을 마치며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들의 구상이 구체화 됐다는 그는 "그것은 '발굴'이 테마이며, 2115년 미래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역시선적 작품'일 수도 있다"는 힌트를 주었다.

한편, 이번 기획초대전은 지난 2011년 9월 2일 개관이후 지역문화예술을 위한 공공적 기여를 지향하고 있는 우민아트센터가 '충북연구와 미술'을 테마로 마련한 2012년 주제기획 '집합적 멜랑꼴리', 2014년 기획초대 '임충섭 개인전'에 이은 지역 관계성 확장을 위한 전시다.

/ 송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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