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엄기찬 사회부 기자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은 '보조금이란 국가 외의 자가 수행하는 사무 또는 사업에 대해 국가가 이를 조성하거나 재정상의 원조를 하기 위해 교부하는 보조금, 부담금, 그 밖에 상당한 반대급부를 받지 아니하고 교부하는 급부금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단체 또는 누군가 무엇을 하려할 때 국가나 자치단체에서 그 하려 하는 것이 조금 더 쉽게 이뤄져 공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돈'이다. 이런 보조금은 무엇으로 충당하는가. 나라 재정이다. 또 나라 재정은 어떻게 꾸려지는가. 국민이 낸 세금이 바탕이다.

'세금(稅金)'을 흔히 '혈세(血稅)'라고도 한다. 국민의 피를 짜내듯이 걷은 세금이란 뜻으로 매우 소중해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조금 더 나가보자. '고혈(膏血)'이란 말도 있다. 기름과 피라는 뜻으로 몹시 고생해 얻은 재물이라는 깊은 뜻이 있다. 옛날 백성에게 가혹하리만치 세금을 거둬들인 벼슬아치들에게 민초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만큼 '세금'에는 그 나라 국민 또는 백성의 땀과 고단함, 삶의 힘겨움이 벌어 들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숭고함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세금' 아니 '혈세'와 '고혈'이 줄줄 세고 있다. 다시 쓸어 담을 수 없을 만큼 수습이 불가할 정도다.

촘촘하지 못한 법망에 구멍 뚫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보조금이 '눈먼 나랏돈' 내지는 자신의 '쌈짓돈'처럼 허투루 쓰이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모럴해저드(moral hazard)'까지 더해져 '그까짓 것 보조금 따위도 못 타내면 바보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줄줄 세는 보조금이 어느 정도인지, 법망이 얼마나 헐거운지, 제도의 구멍이 얼마만큼 큰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최근 '교통봉사대'란 이름을 내걸고 보조금을 받아 3억5천800만원의 보조금 가운데 35만원을 제외한 99.9%의 보조금을 회식비 등 자신들의 입맛대로 쓴 충북의 한 교통봉사단체 전·현직 임직원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허투루 쓰이는 보조금은 각 분야를 막론한다. 모럴해저드가 '극에 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북도청 역도실업팀은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훈련비 등의 자치단체 지원금을 6년 동안 감독이 거둬들여 개인적인 용도로 쓴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로 일부 혐의가 확인되면서 몸살이다.

또 유류보조금을 주유소 업자와 짜고 빼돌린 농민부터, 보육교사를 허위로 등록한 뒤 보조금을 가로 챈 어린이집원장까지 보조금 횡령이 연일 뉴스거리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치안전망 2015'에 따르면 국고보조금 규모는 2007년 32조원에서 지난해 52조5천억원으로 64% 늘었다. 그에 따라 올해 보조금 부정수급 비리 등의 범죄 또한 늘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가 지적했듯이 국고보조금은 해마다 규모가 증가하고 있으나 관리감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즉, 법망이 촘촘하지 못해 그 빈틈을 노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헐거워진 법망을 촘촘히 하고 뻥 뚫린 제도의 구멍을 메워 더는 국민의 '혈세'가 허투루 쓰이고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법망과 제도를 과감히 손을 봐야한다.

처벌도 강화해 더는 보조금으로 허튼 짓을 못하도록 법의 준엄함을 보여줘 무너진 도덕성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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