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 박익규 세종·오송주재 겸 부국장

정치선 실망을 야구에선 찬사 받은

서로 다른 운명의 기로에 선 리더들

야신의 강직·현명 다시 돌아보게 돼

요즘 충청도는 흥이 난다. 적어도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야구 경기에서만은 그렇다. 충청도 출신인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취임 70일만에 물러난 소식에 탄식하면서도 한화 이글스가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어찌보면 수준 낮은 정치게임에 대한 항심(抗心)이 작용해서일지도 모른다. 불꽃의 투혼을 불사르고 있는 한화 이글스가 고마운 이유다.

물론 아직은 이를 수가 있다. 144경기중 겨우 20여 경기를 치른 마당에 한화 이글스의 비상을 예단하는게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격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한화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비단 충청도 출신의 한화팬들만은 아니다. 시청율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방송사 입장에서도 한화 경기 중계를 맡으면 쾌재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전문 야구인들을 차치하고 관심있는 국민들은 한화의 대변신에 놀라움을 금치못하고 있다. 보는 즐거움을 넘어 한화 야구 경기는 중독성이 있다. 오죽하면 마약인 마리화나를 풍자해 '마리한화'라고 하지않나….

그 중심에 야신(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한화 김성근 감독이 있다. 지난해 11월 김 감독은 청와대 초청으로 '어떤 지도자가 조직을 강하게 하는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는 '강직한 리더십'을 강조하며 "세상의 모든 손가락질을 이겨내야 리더가 될 수 있다.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내 뒤의 사람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 비난에 대해 해명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이며, 내 길을 가야한다"고 했다.

이어 '냉정한 리더십'을 제시하며 "(선수들을) 훈련시킬 때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리더가 아니다. 비정함 자체가 애정에서 나오는 감정이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부족한 부분이다. 선수를 혼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프로는 이겨야 하는 것이다"며 이기는 야구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현명한 리더십'도 설파했다. "절망 속에서 나오는 리더의 아이디어가 조직을 살린다. 1%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조직에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조직이라는 것은 리더의 의식으로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 결과 없는 리더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질고 매정해보이지만 강단있는 리더십의 결과물일까? 한화의 팀 컬러가 확연히 바뀌었다. 매년 꼴찌 신세에서 비록 초반이지만 5할 이상의 승률로 현재 공동 4위를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포기하지않고 뒤집는 경기가 수두룩하다. 당연히 팬들의 애정이 넘쳐 대전 홈 12 경기중 벌써 3번이나 만원관중 매진을 기록중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이완구 전 총리가 불명예 퇴임 직후 입원했다고 한다.

어쩌다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萬人之下)의 국무총리가 수사 대상으로 전락했는지 측은하다. 한때 충청권 대선주자로 부상한 그였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 충청권은 서로 다른 운명의 두 명의 리더를 목도하고 있다. 정치판에선 이 전 총리로부터 실망을, 야구판에선 김 감독이 흥분을 주고 있다. 김 감독은 존경보다 신뢰를 더 중시했다. 다시금 김 감독이 제시한 리더의 덕목인 '강직'과 '냉정', '현명'을 생각한다. 이 전 총리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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