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부부화가' 구자승·장지원 화백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 가운데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으로 손 꼽힌다. 그런 삶이야 말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상이다. 부부가 같은 일을 하면서 한 길을 걸어간다면 더욱 그렇다. 충주에 둥지를 튼 구자승(74) 화백과 장지원(69) 화백은 함께 예술혼을 불태우며 살고 있는 화가부부다. 둘은 평생 같은 길을 걸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노년을 누리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비내섬의 갈대밭이 고즈넉히 내려다 보이는 충주시 앙성면 조천리 산자락. 가끔씩 들려오는 산새소리와 바람소리는 마치 이 곳이 평온만이 존재하는 장소인 듯하다.

이 산자락 중턱에 자리잡은 하얀색 저택이 대한민국 화단의 거목으로 손 꼽히는 구자승 화백과 장지원 화백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다. 넓은 정원에 잘 다듬어진 초록색 잔디밭과 붉은색 영산홍이 제대로 어울리며 봄기운을 연출하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왼쪽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마주한 꽤 넓은 두개의 작업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남편인 구자승 화백, 다른 하나는 아내인 장지원 화백의 작업공간이다. 두 작업실은 한치의 오차 없이 같은 크기로 마련됐다. 보통의 작업실은 각종 화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지만 이 부부의 작업실은 전시실로 착각할 정도로 말끔히 정돈돼 있다. 단아하고 깔끔한 부부의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부부는 30년 전 아무런 연고가 없던 이 곳과 인연을 맺었다.

은퇴 후 편안하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던 중 지인의 소개로 이 곳에 들렀다가 아예 둥지를 틀게 됐다.

처음에는 작업실만 마련해 놓고 가끔씩 작품활동과 휴식을 위해 내려왔지만 부부가 교단에서 정년한 뒤 8년 전부터 아예 이 곳에 집을 짓고 눌러 앉았다.

구 화백은 상명대학교 교수로, 장 화백은 연성대학교 교수로 대학강단에 후학들을 가르치다 정년퇴임했다.

부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 캠퍼스커플로 만나 평생의 동반자가 됐다. 둘은 지금까지 13회의 부부전을 열었다.

극사실주의 표현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자승 화백은 '구상미술의 신사'로 불린다. 그의 그림은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사진의 기계적인 영상과는 달리, 작가의 감성과 혼이 깃들여져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대통령의 초상화가 그의 붓 끝에서 탄생했다.

구 화백이 그린 정물화는 절제된 구성과 구도가 적용돼 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구성과 밝고 투명한 색감, 넓고 시원한 여백은 보는 이들에게 시각적 안정감과 청아함을 느끼게 만들며 작가의 얼핏 동양적인 세계관도 엿보인다. 그는 과거 사실주의에서 나타나는 어둡고 중후하게 느껴지는 색채이미지에서 벗어나 맑고 밝은 색채이미지를 지향한다. 또 실제를 과장해 그리지 않고 일상적인 시각을 신뢰하는 쪽이다.

그는 색을 남용하는 법이 없다. 100여 가지 넘는 색이 있지만 그는 12가지 색 이내의 단아한 색상을 선호한다.

정물화의 대상으로는 주로 낯선 공산품들을 선호한다.

단출한 구도를 즐기지만 서로 다른 오브제들이 비쳐지고 가려지면서 만들어지는 조형미는 철저하게 기획된 작가의 의도다.

구자승 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새로운 꿈을 꾸는 것으로 그 대상들 하나하나가 내 분신이 되고 잃어버린 꿈의 파편이 된다"고 말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구 화백은 드로잉을 작품의 독립된 장르로 끌어올린 작가다. 그는 "드로잉은 그림을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고 작가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라며 "스피드와 강약에 의한 터치로 선을 그리고 농담을 표현할 때 황홀감까지 느낀다"고 말한다.

구 화백은 드로잉 작품을 그리는 3분여 정도의 시간 동안 폭발적인 에너지와 고도의 집중력를 보인다.

그가 그린 3분드로잉 작품은 콜렉터들이 따로 있을 정도다. 한국인물작가회 고문과 상명대학교 명예교수를 맡고 있는 구 화백은 지난 2010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미술부문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을 받기도 했다.

구 화백의 집안 내력부터 온 가족이 미술가 집안이다. 증조부가 그림을 그렸고 동아일보에 재직했던 선친도 아마추어 작가였다.

유학 중인 아들과 딸도 미술을 전공했다.

아내인 장지원 화백도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과 한국여류화가회 회장을 역임한 여류화단의 거목이다.

장 화백은 구 화백에게 미술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지만 부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장 화백의 그림은 새와 꽃, 나무, 등 자연 대상과 시계, 집, 교회 등 일상적인 사물을 일련의 내면화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적인 심상적 이미지로 변형시킨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그의 그림은 밝고 환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장 화백은 "긍정적인 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꽃을 그린다기 보다는 마음 안에 있는 꽃을 작품 속에서 만들어 나간다"고 말한다.

미술평론가인 윤진섭 호남대 교수는 장 화백의 작품에 대해 '느림과 은유의 아우라'라고 평가한다.

부부는 이처럼 서로 다른 화풍의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둘의 그림은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이 때문에 구 화백과 장 화백의 부부전은 개별작품에 대한 감상 외에 두가지 화풍의 조화를 보는 또 한가지의 묘미가 있다.

둘은 서로에게 최고의 동반자인 동시에 최고의 비평가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 따뜻한 격려를 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따끔한 질책을 주고 받는다. 두 화백은 그동안 여러 차례 개인전과 부부전을 가졌고 수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인생과 예술의 동반자로 서로 의지하며 식지 않는 예술혼을 함께 불태우고 있다.

구자승 화백은 자신의 오랜 작품활동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내년에 많은 지인들을 모시고 회고전을 가질 계획이다.

앞으로 '제 2의 고향'이 된 충주지역의 예술문화발전을 위해서도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노을진 남한강 변을 산책하는 노부부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숨길 수 없는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정구철 /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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