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고향.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단어다. 각기 떨어져 사는 가족들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정겹고 단란한 모습이 떠오른다. 고향 없는 사람은 없다.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등이 사전적 정의다.

한자로 故鄕. 우리말로 옮기자면 '옛날 시골'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곳에 살지 않는다. 늘 가고 싶은 그리움이 듬뿍 담겨 있음을 사실대로 풍긴다. '故'자의 왼쪽 '古'는 옛날을, 오른쪽 복은 '손(又:우)에 막대기를 들고 있는 모양'으로 '막대기로 내리치다'를 뜻한다. '鄕'자의 중간 글자는 '그릇과 그곳에 담긴 음식'을, 양쪽은 '꿇어앉은 사람'을 가리킨다. 고로 '鄕'은 '마주 보고 음식을 먹다'를 뜻한다. 고향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마음이 어우러진 복합개념이다. 시간적으로는 친구들과 막대기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이고, 공간적으로는 늘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마주 보고 먹던 옛 시절의 마을, 집이 바로 고향이다. 여기에 늘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우러졌다.

복사꽃이 만발하고, 봄내음이 물씬 풍기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뒷동산 뻐꾸기가 울어대고, 사철 구분이 확연하고, 이웃의 정이 넘치고, 꼬부랑길이 산속으로 미끄러져 숨는 곳이 고향이다. 기록상 고향은 순자(荀子)가 처음 사용했다. 새와 짐승도 고향을 지날 땐 배회하고 슬피 울며 주저 한다.

향수(鄕愁). 고향과 무촌(無寸)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을 말한다. 향수에 젖어 눈물로 세월을 보낸 미인들이 있다.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한나라 왕소군(王昭君)과 월나라 서시(西施)다.

화공이 고의적으로 초상화를 추하게 그리는 바람에 한 원제(元帝)에게 진한 사랑 한 번 받지 못한 채 희생양이 된 왕소군. 흉노족과의 화해조건으로 오랑캐 선우의 아내로 상납됐다. 선우 사후 선우 본처의 아들과도 재혼해 모두 3명의 자식을 낳고 살았지만 늘 고향, 남쪽 한나라를 잊지 못했다. 이런 왕소군의 애달픈 심정을 당나라 동방규(東方叫)가 시로 읊었다.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자연의대완 비시위요신(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오랑캐 땅이라 아예 꽃과 풀이 없으랴 만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자연스레 허리띠가 느슨해지나 잘록한 허리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昭君怨>"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전쟁에 패하자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상납한 서시. 미인계의 막중한 임무를 띠고 오나라에 와 최고의 호화스런 생활을 했지만 늘 마음은 허전했다. 고향을 떠나 온데다 일종의 스파이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나라는 오나라에 금은보화의 조공을 받쳤다. 부차가 "이들 가운데 원하는 하나를 가져라"고 서시에게 허락했다. 그녀는 예상외로 상아 젓가락 한 쌍을 골랐다. 이 젓가락에는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고 "월조소남지(남쪽에서 올라온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越鳥巢南枝)"가 새겨져 있었다. 왜 하고 많은 보물 가운데 젓가락을 골랐을까? 상아 젓가락과 걸 맞는 생활은 극도의 사치와 호화였다.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나라 사치를 부추김은 물론 고향, 월나라를 잊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였다. 결국 서시는 임무를 완수하고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런 고향이 개발논리와 편의주의에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다. 뻐꾸기가 온난화와 오염에 따른 먹잇감 부족으로 사라지고, 꼬부랑길은 뻥 뚫린 콘크리트길에 내어주고, 초가집은 개량 한옥으로 바뀌고, 텃밭에는 대형 비닐하우스가 들어서고, 시냇물은 흔적조차 없어지고, 봄내음은 농공단지의 매연이 대신하고, 얼룩배기 황소의 게으른 울음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그래도 난 고향에 가고 싶다. 아니 그냥 고향을 그려 보고 싶다. 인공과 사회적 사실로부터 짧은 순간과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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