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익규 부국장겸 세종·오송주재

일부 주민이 던진 '상처' … 똑같은 인격체 무엇보다 진심담은 말 한마디 제일 필요

2년 전 새해 첫 날로 기억된다.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의 눈치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란 것이 누구에게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경비 아저씨들에게는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라는 것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보기에도 충분했다.

순간 어릴 적 동네 눈을 치우던 추억이 떠올랐다. 벙어리 장갑을 끼고 친구들과 눈을 치우며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집에는 마땅한 제설장비가 없어 경비 초소를 찾아갔다. 초소 뒤편에서 커다란 싸리비와 제설용 삽을 들고와 눈을 쓸었다. 조금 있다보니 큰 애가 따라 나와 함께 눈을 치웠다. 한참이 지났을까. 경비 아저씨가 놀란 듯이 찾아왔다. 자신이 치울테니 그만 하라는 것이었다. 아이와 눈 치우는 모처럼만의 즐거움을 그만 두라니….

아니라고 옥신각신하다가 내 고집이 이겼다. 이번엔 한 아주머니가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보더니 들어갔다.

잠시 후 한 학생이 나왔다. "아저씨, 저도 눈을 치울래요. 엄마가 함께 도우래요" "그래, 너도 저쪽 초소 뒤편에서 빗자루를 가져와 함께 하자" 30여분 남짓 우리 아파트는 경비 아저씨와 우리 부자, 다른 학생들이 늘어나 대, 여섯 명이 함께 눈을 치우고 있었다.

지난주 청주 시내 한 아파트에서 경비 아저씨들과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충북경영자총연합회가 경비직 근로자 우선지원 사업으로 마련한 노무관리 컨설팅 자리였다. 그들과 좀 더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위해 2년전 추억을 꺼냈으나 곧 이상한 사람이 돼버렸다.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이제까지 경비직 근로자로 근무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적이 없을 뿐더러 청소하는 것을 도와주길 결코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그냥 자신들을 똑같은 인격체로 보아달라는 것이다. "'고생하십니다', '수고하십니다' 그 말 한마디면 됩니다"

지난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경비 근로자의 분신자살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일부 몰지각한 주민의 볼썽 사나운 행동과 말 한마디가 여전히 경비 아저씨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아파트 주민을 떠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내년부터 최저임금이 올해 5천580원보다 8.1% 오른 6천30원 적용된다.

그동안 경비직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률은 2007년 70%에서 2008∼2011년 80%로, 2012∼2014년 90%를 유지하다 올해부터 100%로 인상됐다. 최저임금이 올랐으니 내년부터 약간의 인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더 큰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혹여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감축을 위한 감원 등으로 힘들게 구한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이다.

이런 점에서 청주시와 고용노동부가 1억4천만원의 재원을 마련해 청주지역 23개 임대 아파트 87명의 경비직 근로자 1인당 연간 72만원의 고용지원금을 간접 지급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사업이다. 오늘도 폭염속 아파트 화단에서 풀을 뽑고 재활용품을 분리하는 경비 아저씨들을 본다.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말 한마디 건네자. "수고하십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