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3년째 한증막 같았던 어느 여름날, 동부전선 '애록고지'에는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처절한 전투가 이어졌다. 전사자가 온 산을 뒤덮은 전략적 요충지 '애록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국군과 인민군의 피 묻은 얼굴엔 광기(狂氣)가 번뜩였다. 하나 둘 총탄에 쓰러지는 상황에서 살아남아 모르핀으로 연명하며 싸웠던 꽃 같은 청년들에겐 상대는 오로지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이 급박한 순간에 어디선가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정전협정 5조63항에 따라 전(全) 전선에서 전투를 중지한다. 반복한다. 정전협정…"

장훈 감독의 2011년 영화 '고지전'은 애록고지의 참혹했던 전투가 배경이다.

끝까지 살아남은 국군 강은표 중위(신하균)와 인민군 현정윤 대위(류승룡)가 부상을 입고 탈진해 참호 속에서 조우(遭遇)했다가 휴전협정 체결소식이 흘러나오자 피아를 잊은 채 함께 미친 듯이 웃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웃음속에 전쟁의 무상함과 삶의 허무함이 진하게 묻어있다.

6·25 전쟁 당시 남북을 합쳐 50만여 명의 청춘이 고지전에서 삶을 마감했다. 그들의 죽음은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날이 1953년 7월 27일. 63년전의 오늘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부담을 느낀 유엔군과 공산군은 비밀 접촉을 거쳐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을 가졌다. 이후 9개월 간 소강상태를 거쳐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최종적으로 서명함으로써 협정이 체결됐다.

이로써 6·25전쟁도 막을 내렸다. 협정체결이 늦어지면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물론 유엔군들이 머나먼 타국의 전쟁터에서 산화(散華)했다.

이 협정으로 인해 남북은 휴전상태에 들어갔고, 남북한 사이에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설치되었다. 정전 협상을 맺은지 올해로 63년째다. 국제 관례상 정전협정이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경우는 한반도가 유일하다.

하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휴전상태일 뿐이다.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한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폭 사건이 이를 웅변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최근 관객 600만명을 돌파한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3·4위전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 참수리-357호정에 기습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영화를 보며 많은 관객들이 가슴 저릿한 감동을 맛보았다. 관람객의 70%이상이 2030세대라고 한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한반도가 아직도 휴전 중에 있다는 것을 체감할 것이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과연 언제 올 것인가. / 박상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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