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두메산골 외갓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었다. 지금이야 도시로 편입돼 땅값도 오르고 교통도 편리해졌지만 40여년전 외갓집을 가려면 나훈아 노래 가사처럼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시골역'에서 내려 20리는 족히 걸어가야 했다. 개울도 건너고 성황당도 지났다. 황금물결을 이루는 들판도 걷고 나무가 울창해 한낮에도 으슥한 고개도 넘어야 했다.

놀거리, 볼거리가 없는 시골에서 도시아이에게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소형트럭에 영사기를 싣고 와 면소재지 손바닥만한 광장에서 열리는 순회극장이었다. 가설극장은 시설도 간단했다. 하얀 광목으로 스크린을 설치하고 그 앞에 가마니만 깔아놓으면 됐다. 어차피 밤에만 영화를 상영했기 때문이다.

페인트로 그린 영화포스터 간판을 매달고 달리는 낡은 트럭의 스피커에서는 영화 상영작이 소개됐다. 흑백 TV도 흔치 않았던 시절 개봉이 한참 지난 영화는 산골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영화가 끝나면 동네 어른·친구들과 함께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고갯길을 넘던 기억이 난다.

얼마 전 충북 옥천군이 운영하는 '찾아가는 영화관'이 인기라는 보도를 보고 옛 생각이 떠올랐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 한 이후 청주만 해도 영화관은 포화상태다. 인구 85만 명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8곳이 된다. 여기에 디지털TV도 보급되고 케이블 영화채널도 많아졌다. 실시간으로 인터넷이 연결돼 젊은층은 아무 때나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군단위 극장은 어느새 하나 둘 사라져 시골사람들이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일은 오히려 이동극장 시절보다 더 어려워졌다. 반면 대도시에선 포화상태인 영화관의 과열경쟁으로 아무 때나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찾아가는 영화관'은 영화 관람 기회가 적은 벽오지 주민들을 위해 3년 전 시작됐다.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매달 상영 장소와 작품을 정하는 방식이다. 상영 일정이 정해지면 센터 직원이 스크린과 영상장비를 들고 나가 임시 상영관을 차린다. 상영관은 마을회관이나 요양원, 경로당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영화관이 차려지는 날이면 주민들은 마을잔치를 벌이는데 올해 7차례 운영된 영화관에 700명이 넘는 주민이 찾아와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영화 '시네마천국'에선 2차 대전 직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작은 마을의 '시네마 파라디소'라는 낡은 영화관이 배경이다. 이웃마을 영화관과 동시 상영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어 필름을 운반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필름이 제 때 오지 않으면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관객들이 격렬하게 항의한다. 예전 단관극장에선 흔한 풍경이다. 수염 덥수룩한 알프레도가 도시로 떠나는 젊은 토토에게 애틋하게 건네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건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렴." 하지만 찾아가는 영화관엔 그 말을 들을만한 아이들이 거의 없다. 대신 시골엔 어르신들만 남아 '수상한 그녀', '광해'를 보며 잠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박상준 /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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