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쓴 책은 관심 없이 지나치곤 했다.
 골수에 새겨진 한의 밀도도 모를 테고, 또 역사가 각인된 유전자도 한 톨 없으면서, 「몇 년 살아보고 뭘 안다고…」 하는 마음이었다.
 최소한 귀화할 정도의 끈끈한 애정이 바탕에 있어야 비판할 자격도 있다고 끄덕이면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며 얼마쯤은 당황했다.
 언어를 배운 곳에 따라 지방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처럼 글쓴이의 다소 과격하고 전투적인 어투에 운동권 서적을 읽는 듯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법 무거운 내용은 소소한 잔신경 거리들로 난마처럼 얽힌 생각들에 또 다른 카오스로 작용했다.
 날카로운 자극으로 개운함도 주었지만 지나쳐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가슴 따뜻한 평화주의자의 지압실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백인에 대한 사대주의와 유색인종에 대한 멸시, 숨막히는 종교의 패거리 문화, 상아탑의 전근대성, 영어 공용화론의 망상 그리고 군대내의 폭력 문제 등등 한국사에 해박한 논리적인 질타는 드라이아이스가 되어 미지근하던 내 이성에 찬서리가 맺히도록 해 준 것 같다.
 사회화가 느슨하게 이완되었던 우리 아줌마들도 때로는 가정의 울타리 너머로 긴장의 눈길을 보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모스크바 극동 연구소라는 곳에는 그곳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들의 초상화가 걸린 「코리아 갤러리」라는 웃기는 공간이 있다는 둥, 세종로에 있는 이순신 동상의 위치가 과거와 현재의 권력, 그리고 외세와 언론 권력의 중심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냐는 둥, 둘러앉은 저녁 식탁에서 가족들을 한번 의식화(?)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그리고 며칠 전, 생리대에 세금 붙이는 문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두 딸을 포함한 세 여자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던 남편에게 자아비판도 하면서 모병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면 이미 민방위 훈련까지 끝난 남편이 감동할라나?
 아무튼 가족들 벌어 먹이느라 일개미처럼 바쁜 남편에게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흔적으로만 남아있던 사회 참여 열기, 정의감 뭐 이런 것을 조근조근 수다로 팽팽하게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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