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11일 당시 충북도교육감에게 뇌물 500만원을 건냈다고 진술한 교육장 A씨는 검찰의 3차 소환 조사 6일 후 돌연 청주성모병원에서 '병실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병상에서 '양심 호소의 글(강압적 언어폭력으로 허위자술서 작성 배경)'이라는 글을 낭독했다. 공모제 교육장 임명 후 뇌물 수사를 받았던 그는 혐의를 인정한 자술서 내용이 '밤샘 조사'와 강압적 분위기를 못견딘 결과라며 진술을 번복했다. 자신과 교육감, 교육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헐리우드 액션'이라는 시각과 수사가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맞섰다.

동기야 어찌 됐든 그의 '액션'은 1심에서 상고심까지 법리 다툼을 야기했다. 1심에서는 '밤샘조사'의 증거력이 쟁점이 됐다. 1심은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은)'수사기관의 밤샘조사가 증거능력을 갖느냐'를 놓고 집중 심리했다.

재판부는 검찰 손을 들었다. A씨가 2차 조사에서 자백 후 자술서를 작성한 점과 조서에 서명무인한 점, 철야조사를 했으나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사실, 조사 다음날 정상 출근해 교육장실에서 수사관을 만나 공직유지 가능성, 교육감과의 관계를 논의한 점을 고려했다. 이러다 입원 4일만에 기자회견을 한점, 당사자 승낙과 휴식을 부여한 점에 비쳐 중대한 인권침해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징역 10월형에 집유 2년(뇌물공여)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쟁점은 '검사가 직접 작성하지 않은 수사관의 피의자 신문 조서'로 이동했다. 이 무렵 검찰은 수사관이 조서를 작성하면 검사는 피의자와 함께 확인하는 정도를 관행으로 여겼다. A씨 변호인은 이를 '급소'로 봤다. 무죄가 선고됐고, 대법원 역시 원심을 인용했다.

대법원은 2003년 10월 "검찰 직원이 작성한 조서에 대해 검사가 피의자를 상대로 개괄적인 확인만 했다면, 피의자가 법정에서 부인하는 경우 유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과중한 업무부담 탓에 피의자 신문을 직원에게 맡기는 관행을 해소하려면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한다는 불만이 불거졌지만, 검사들이 직접 신문에 참여않는 관행을 바꾼 계기가 됐다.

정치자금법위반혐의를 받고 있는 이승훈 청주시장이 지난 2일 출두해 21시간 조사를 받아 모처럼 '밤샘조사'라는 용어가 언론을 장식했다. 이번 경우는 변호인 입회와 당사자 동의하에 이뤄져 A씨 사례와 견줄 수는 없어 보인다. 법률 다툼이 전개되겠지만, 이번엔 오히려 취임 초기부터 입방아에 올랐던 선거캠프 출신 측근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검찰 수사 향방과 함께 세간의 주목을 더 받는듯 하다. 측근들이 포진한 체육단체 등에 대해 검찰 수사와 동시에 진행되는 청주시의 감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표가 필요했던 단체장과 당선자를 '우산'삼아 호가호위(狐假虎威) 하려던 이들의 자화상이다. / 한인섭 정치부국장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