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세계’가 의리를 다뤘다면, ‘대호’는 도리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의 도리다.

17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자 12월 성수기 극장가에서 ‘히말라야’와 경쟁할 박훈정 감독의 신작 ‘대호’가 10일 압구정CGV에서 제작발표회를 열고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대형 스크린에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배우 최민식(53), 정만식(40), 김상호(45)와 박훈정(41) 감독이 참석했다.

CG로 살려낸 지리산의 산주(山主)는 몸길이 380㎝, 몸무게 400㎏으로 아직 한 두 장면 밖에 보여주지 않았으나 제법 사실적이면서 위용이 대단하다.

전례 없는 영화적 시도에 나선 박 감독은 “예부터 호랑이가 많은 나라였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멸종이 됐다”며 “친숙하면서도 동경의 대상인 조선 호랑이의 마지막 모습에 관심이 많아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7년 전, 감독 데뷔 전에 쓴 시나리오다. 집필 두 달 만에 영화사에 팔렸는데 어떻게 인연이 닿아 직접 연출까지 하게 된 특별한 작품이기도 하다.

우연의 일치지만 호랑이띠인 박 감독은 이번에 자신처럼 호랑이띠인 두 배우와 작업했다. 최민식과 최민식이 추천한 정만식이 주인공이다. 김상호는 “6개월 동안 호랑이 세 마리가 뛰어다녀서 식겁했다”며 “나는 개띠”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최민식은 이번 작품에 애정을 넘는 어떤 존경과 예의를 보였다. “기존에 다뤄진 적 없는 호랑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영화라 매력적이었다. 비운의 명포수 ‘천만덕’은 복합적으로 접근한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종교적·철학적 메시지에 끌렸다”며 “1920년대 일제감정기가 배경이라 일제의 착취, 억압도 느낄 수 있겠으나 그것을 뛰어넘는, 이 영화의 철학적 가치에 많은 관심이 공유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인간의 업이라고 할까, 포수란 산 생명을 죽여야만 자기가 먹고 살고 목숨을 부지하는 직업이다. 그럼 그 업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평생 생목숨 끊어온 사람의 결말, 그런게 서글프면서도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느꼈다. 구업을 짓는다고 한다. 언어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자신의 행위에 따른 업,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배우로서의 사명감도 느꼈다. 최민식은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목표는 절체절명의 내 사명이었다”고 힘줘 말했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대호다. 대호는 여러분이 알겠지만 컴퓨터 그래픽이다. 모든 관객이 속된 말로 너희 범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보자고 올 텐데, 행여라도 기술적 결함이라도 있다면 그걸 만회해줄 것은 강렬한 드라마뿐이라고 봤다. 내가 연기한 천만덕의 가치관과 세계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MC 박경림이 ‘천만덕’이라는 이름에 1000만 관객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느냐고 묻자 최민식은 “안그래도 이 질문을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했다”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고 웃겼다.

‘대호’는 1925년 지리산을 무대로 조선 호랑이의 가죽에 매료된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가 수하의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류(정석원)와 조선 포수대 우두머리 구경(정만식)을 몰아 붙여 대호 사냥에 나서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어떤 사연으로 총을 내려놓은 전설의 명포수 천만덕은 시대가 강요하는 욕망에 끝까지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정만식이 연기한 도포수 ‘구경’은 옛 동료 만덕을 끌어들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정만식은 “최민식이 고맙게도 불러줬다”며 “오로지 현장에서 대호를 잡고 싶다, 잡아야 한다, 그것만 생각하고 현장에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최민식은 정만식을 추천한 이유로 “시나리오 읽으면서 구경 역할에 정만식이 딱 떠올랐다”고 말했다.

조선 포수대 일원인 생활형 포수 ‘칠구’는 인간적인 배우 김상호가 맡았다. “시나리오 봤는데, 정말 가슴이 떨렸다”며 “이렇게 호랑이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평소에 일제강점기 민초들이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지 궁금했는데, 그런 부분이 담겨있었다. 게다가 최민식이 있는데 안 할 수 없다. 신발 벗고 뛰어갔다”고 밝혔다.

총 쏘는 법은 군대를 다녀온 덕에 어렵지 않았다. 최민식은 “군대갔다 오고 예비군까지 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총을 잡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세가 나온다”고 했다. 설산을 뛰고 구르느라 육체적으로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최민식은 육체적 어려움보다 현장에 있는 그 자체의 감동을 언급하며 나이듦을 내비쳤다.

최민식은 “이런 표현이 닭살 돋지만 동생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항상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동료들과 지금 이순간 이 공간에 같이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벅찼다. 서로 모나지 않고, 서로 어우러지는 그 순간에 감동을 받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현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 자체에 감명을 받는다.”

박 감독은 이 작품과의 남다른 인연을 곱씹었다. “한 7년 전에 쓴 책으로,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 당시 배고픈 작가 시절이어서 얼른 팔려고 썼다. 근데 이 시나리오가 돌고 돌아서 내게 다시 왔고 다시 손보면서 생각했다. 어떤 작품이건 소홀히 하면 안되겠구나.”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후반 작업 중인데 정말 잘 만들었다.”

또 “우리 기술팀을 믿고 시작했다”며 “촬영하는 동안 호랑이가 어느 정도 완성도로 구현될 지 가늠이 안 돼 스트레스를 받았다. 만약을 대비한 촬영이 필요했고 준비했다”며 기술적 부분에 대한 걱정도 고백했다.

한편 ‘대호’는 음악에 매우 공을 들인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현지 오케스트라와 소년합창단을 섭외해 영국 애비로드에서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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