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대법원 판결로 국회의원직을 잃은 송광호 의원(새누리당·제천 단양)은 결국 '불명예'로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철도비리'를 비켜 갔다면 그의 40년 정치 이력은 '박물관' 한켠을 장식했을 정도로 독특한 스펙트럼을 지녔다.

30대 후반에 입지(立志)했던 터라 박정희 시절부터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어진 격변의 시대가 그의 정치이력에 배어 있다. 송 의원이 정치에 뜻을 뒀던 시절은 밀가루 풀을 쒀 벼름박에 붙였던 '의원 달력'에서 고무신, 다기상, 돗자리, 보자기와 같은 현물을 능력 껏, 무시로 퍼부었던 때였다. 단돈 몇십만원 때문에 의원직을 상실할 정도로 맑아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만고풍상(萬古風霜)'이었을 게다.

육군 중령(ROTC) 예편 후 잠시 기업체를 운영하다 정계 진출한 그는 승율이 50%를 넘지 못했지만, 칠순의 나이에 4선을 기록했다. 그가 제천·단양 주민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렸던 것은 최전방 육군 보안부대장 시절 제3땅굴 견학을 주선했을 때 부터였다. 대략 1978년~1979년 무렵이다. 북한 김일성 도발 상징물 '땅굴'을 다녀온 이들의 벼름박에는 그의 이름 석자와 땅굴사진이 새겨진 접시형 장식품이 걸리곤 했다. 당시 '땅굴견학'은 요즘의 해외여행보다 대접받은 시절이라 시골마을에서는 가족사진 액자와 나란히 걸릴 정도였다. 요즘으로 치면 기부행위에 딱 걸려 피선거권을 박탈당할 정도의 사안이다. 하지만 그 무렵엔 '호랑이가 고기 먹었다'는 얘기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로 간주됐다.

1984년 중령 예편 후 그는 다기상과 돗자리, 보자기 류의 생활용품을 돌리는 방식으로 이름 알리기를 본격화 했다. 이 무렵 현역의원들은 유명 화장품 세트까지 대량 살포했다. 결국 1992년 14대 총선에서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현역이던 안영기 의원을 누르고 당선된 그는 4선에 이르기까지 '뚝심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주로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해 종종 헬멧을 쓴 채 건설현장에서 촬영한 이미지 사진을 홍보하는 방식도 그의 특기였다. 그랬던 그는 18대에 이어 19대에서 거푸 당선돼 4선이자 여당 중진으로 자리잡았다. 19대 국회 최고령(만 73세)의원이었던 점도 기록 이었다. 그랬던 탓일까.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측근들을 향해 유난히 '쓴소리'를 퍼붓는 일을 자처했다. 철도부품 업체로부터 6천5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목했다고 한다. 그는 영어의 몸이되자 후배 정치인들에게 "정치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하다. 정치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변명일 수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팩트'는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40년 정치이력의 송광호도 '독배'를 피할 혜안은 없었나 보다. / 한인섭 정치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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