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 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라면을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으로 자리 잡아 인생을 곱씹게 만드는 하나의 매개체"로 보았다.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삶이 녹아있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라면은 초등학생들도 쉽게 끓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스승 없이 혼자서,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배웠다"고 했다.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라면은 '몰(沒)개성'인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사람마다 수없이 다양한 레시피를 선보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라면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군에서 제대하고 예비군 동원훈련을 갔다. 진천의 한 냇가에서 야영을 하면서 하루 고된 훈련을 마치면 2인용 텐트에 3명이 칼잠을 잤다. 동네 형들 틈에 끼어 움직이기도 불편한 잠자리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밤이 깊어질수록 밀려드는 허기였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텐트를 살짝 빠져나와 친구와 함께 십리를 달려가 마을의 불 꺼진 구멍가게 문을 두드려 라면을 끓여달라고 사정했다. 젊은이가 딱해 보였던지 40대 아주머니가 하품을 하며 일어나 양은냄비에 끓여줬던 구수한 라면 맛은 여전히 뇌리에 박혀있다.

라면은 일본이 원조라는 것이 정설이다.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 면을 기름으로 튀기는 것을 보고 개발했다. 우리나라 첫 라면은 삼양라면으로 1963년 9월 15일에 등장했다. 당시 라면 판매 가격은 10원이었다. 라면을 처음 만든 것은 일본이지만 세계에서 국민 1인당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다. 최근 발표된 농림축산식품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한 사람이 연간 평균 라면 76개를 먹어치운다. 한국은 라면 소비량에서 베트남(55.1개), 인도네시아(52.8개), 태국(45.3개) 등 면을 많이 먹는 다른 아시아 국가를 크게 앞섰다. 라면 소매시장 규모도 1조9천억 원에 달한다. 싱글족과 나들이족 급증으로 간편식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라면은 수출 효자 품목이기도 하다. 지난해 일본을 비롯 중국, 러시아, 미국등 80개국에 2억8천만 달러를 수출했다. 16년 전 방문한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 전망대의 매점에서 우리나라 컵라면이 판매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라면시장도 대표적인 레드오션 시장이다. 라면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브랜드가 탄생하고 소리 없이 사라진다. 한해 쏟아지는 신제품 중 3년을 넘길 확률이 10% 미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히트작이 나오면 업계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라면시장 개척자인 삼양식품도 3위로 추락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라면도 트렌드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되면서 소비자를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라면은 나트륨 함량이 높아 '영양가없는 패스트푸드', '다이어트의 적'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나 역시 자제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지만 아이들이 라면을 끊일 땐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낀다. 김훈의 말대로 인이 박혔기 때문이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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