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이스피싱 사기가 갈수록 지능적이고 대담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피해규모도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마치 조롱하듯이 금융사기 대응을 총괄하는 금융감독원 간부를 사칭해 금융사기를 벌이거나 아예 집까지 쫓아가 돈을 편취하는 이른바 현금수취형 수법도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노인피해가 급증하고 있으나 금융당국과 경찰의 대응력은 떨어지고 있다.

어제 경찰관을 사칭, 노인들을 상대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속여 수천만 원을 가로챈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사기 혐의로 중국국적의 20대 여성조직원을 구속했다. 중국의 보이스피싱 조직은 지난 12일 80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경찰이 집으로 방문할 테니 계좌에 있는 돈을 모두 찾아 전달하라"고 속여 1천300만원을 가로채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일당은 이달 들어 같은 수법으로 서울 서초구에 사는 80대 노인에게 5만 달러(5천600만원 상당)를 받아 챙기기도 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금감원을 노골적으로 비웃는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금융사기 대응을 총지휘하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간부의 실명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수차례 발생했다. 사기범이 사칭한 인물은 직급은 다르지만 금감원에서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금융사기 대응을 총괄하는 서민금융지원 국장으로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통화내용을 담은 일명 '그놈 목소리'를 공개해 피싱 사기 예방을 주도한 간부다. 해당 간부 이름으로 금융사기를 칠만큼 금감원의 금융사기 대응능력을 우습게보고 있는 것이다.

사기범들은 '그놈 목소리' 공개 이후 녹음을 꺼려하며 통화시간을 줄이고 사람도 자주 바꾸면서 '안전조치'를 취한다는 이유로 돈을 찾아놓으라고 한 뒤 이를 편취하거나 훔쳐가는 수법을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현금수취형 금융사기는 최근 급증세다.

문제는 이 같은 피해자 중에는 예비역 대령이나 대기업 직원 등 인텔리층과 의외로 20대도 많지만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생활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사기범들에게 가진 돈을 편취당하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고령인구가 많은 지방도 보이스피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전국적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규모는 2천905억원, 범죄발생 건수는 2만3천500건이었다. 충청지역 보이스피싱 피해액만 250억원에 달했다. 보이스피싱 발생건수와 피해액은 2013년 이후 해마다 증가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일차적으로 피해자의 과실이다. 자신의 금융재산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대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금융사기를 모두 고객이 책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민들의 신용정보 유출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족관계와 은행잔금 자료등 개인정보 불법유통이 가져온 폐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금융당국과 경찰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국민들이 금융사기의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금융시스템을 보완하거나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이스피싱 사기는 금전적 피해는 물론 사람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죄질이 무거운 사회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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