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논설실장.대기자

2년전 13억 인구의 중국이 기침을 하자 글로벌 경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낙농국가인 뉴질랜드 달러가치가 치솟고 미국 옥수수 농장주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피아노 제조업체 주가가 오른 반면 콘돔제조사 주가는 추락했다. 왜 그랬을까. 중국이 산아제한 정책 폐지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세계 관련산업이 출렁거렸다. 중국은 인구팽창을 막기 위해 오랫동안 1가구1자녀 원칙을 고수해왔다. 자녀가 하나밖에 없으니 '소황제'라는 말이 등장했고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신생아가 많아 중국 인구는 고무줄 인구 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인구대국도 고령화로 나라가 노쇠해지고 있다는 진단에는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이럴 진데 한국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생산가능 인구(15~64)가 내년을 정점을 기록한 뒤 2017년부터 줄어드는 인구절벽에 진입한다는 보도는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국가다. "한국경제는 고령화되는 거대한 양로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의 시니컬한 비유지만 거리를 걷다보면 노인요양원이 수시로 눈에 띤다. 반면 그 많던 어린이집은 쉽게 찾기 어렵다. 통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이다. 아기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평가한 가족정책은 우리나라가 최악이다. 합계출산율은 1.15명으로 34개국 가운데 최하위며 여성취업률도 28위에 그쳤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가족지출은 OECD회원국중 꼴찌였다. 국내총생산 대비 가족지원정책의 정부지출 비중은 프랑스와 영국 등 선진국들이 3%를 훌쩍 넘는데 우리는 겨우 0.57%로 조사됐다.

뜬금없이 통계수치를 늘어놓는 것은 최근 충북도의회와 김병우 충북교육감의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갈등'때문이다. 이시종 지사와 김 교육감 사이의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복지 갈등시리즈 제 2탄이다.

도의회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임의 편성 방침을 밝혔지만, 김 교육감은 이를 집행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교육청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수개월 치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교육청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0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했다. 결론은 '돈'이다. 무상복지 재원이 부족하다 보니 또다시 떠넘기기 하는 것이다.

누리갈등은 무상보육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정치권이 아무리 무상복지를 공약해도 결국 그 재원은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조달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교육청도 그 부담은 지기 싫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을 아무리 해결하려고 얼굴을 맞대도 결론을 내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선 설마 하면서도 은근히 불안해 할지 모른다. 어린이집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수도 있고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들은 유치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유치원 정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입학시키기 위해 예전처럼 온가족이 밤새 줄을 서는 생고생을 할 수도 있다.

인구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일본은 출산육아일시금으로 35만엔(385만원), 아동수당 매월 1만엔(약 11만원), 모자가 다양하게 쓸 수 있는 육아응원권(약 66만원·5살까지)까지 주고 있다. 몽골은 다자녀 엄마에게 영웅훈장을 수여하고 18세까지 아동수당을 준다. 20년전 인구폭발로 고민하던 중국도 출산장려로 돌아섰다. 출산을 반드시 돈으로 해결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 없다. '인구절벽'은 어느 나라든 미래 국력을 좌우하는 심각한 리스크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의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재밌게 보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내용은 별거 없다. 유아를 둔 스타 아빠의 육아 도전기다. 그런데도 시청률은 고공행진이다. 특히 배우 송일국의 삼둥이 아들은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육아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이들이 귀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맘 편히 아이를 맡길 수 없는 나라에서 누가 애 낳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정부와 지자체, 도의회와 교육청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무상보육비를 덜 내겠다고 얼굴을 붉히며 씨름하고 있는 현실에서 '신생아'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더욱 힘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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