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보환 제천·단양주재 부장

텔레비전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는 버릇이 생겼다. 맛집 탐방부터 다큐멘터리, 종편의 시사방담 등 정말 많은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격투기 가운데 하나인 UFC(Ultmate Fighting Championship)에 꽂혔다. 프로그램 특유의 음악, 선수가 다른 선수를 둘러메치는 광경은 여운으로 남는다. 스포츠 채널에서 하루에도 몇시간씩 과거 경기를 보여주는데, 볼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8각형 링인 옥타곤에서 펼쳐지는 이 경기에서 선수의 얼굴이 찢어지거나 실신하는 모습은 예삿일이다. 권투에다 레슬링, 유도, 주짓수 등 각국 격투기를 조합해놓은 말 그대로 '종합격투기'이기 때문이다.

이 종목이 비단 기자에게만 꽂힌 것은 아닌 모양이다. 웰터급에서 활약하는 김동현 선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프로듀서를 실습생으로 둔갑시켜 격투기 기술을 보여준다. 아빠들의 육아도전기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중인 추성훈도 본업이 이쪽이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 아들은 만 26세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데, 격투기에 꽂혀 퇴근하면 도장으로 달려간단다. 부모가 말리지만 아들은 "서른살때까지만 해보겠다. 세계적인 무대에 올라 제 자신을 알리고 싶다"고 의지를 꺾지않는다고 한다.

이 경기에 대한 비판도 있다. 뼈가 부러져도 본인의 의사가 강하면 경기를 계속해야 하는 잔인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싸우는 선수들은 사실 많은 돈을 가져가지 못하고, 이 경기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떼돈을 챙겨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렇게 살벌한 경기에도 규칙은 있다. 박치기 공격, 눈을 찌르거나 물어뜯는 행위, 사타구니 공격, 그라운드 상태 즉 바닥에 무릎을 대고 있는 상대방의 머리를 향한 발차기·무릎 공격 등은 금지된다. 이 게임이 묘한 것은 경기 이후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쓰러지는 경우가 많지만, 판정까지 간 선수들도 항의하거나 불복하는 경우는 볼 수 없다. 오히려, 머리에 혹이 나고 얼굴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패자들도 승자와 포옹한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 시간 승자는 "패자가 더 열심히 연습해서 새로운 기술을 갖고 나올 것이다. 오늘은 내가 이겼지만 상대가 훌륭한 선수다"는 말을 한다. 반대로 패자는 "오늘 이긴 선수에게 타격이나 레슬링 기술 모두 완벽하게 졌다. 하지만 챔피언 벨트는 내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찾아오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경기를 통해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점도 배운다. 세계 최고의 여전사로 꼽히던 론다 로우지. 몸매나 얼굴, 파이팅 모두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12승 무패행진을 이어가던 로우지도 오스트레일리아 대회에서 복서 출신 홀리 홈에게 2라운드 티케이오(TKO) 패를 당했다.

승리의 유형도 여러가지다. 1라운드부터 점수를 따서 3라운드, 혹은 5라운드를 마친 뒤 판정으로 이기는 착실한 스타일이 있다. 경기가 끝나기 얼마전까지 내몰리다 한방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괴력의 소유자도 있다. 물론, 한방승의 주인공도 그때까지 자신이 경기가 가능할 정도의 체력과 신체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상하게 격투기를 보면, 우리의 정치현실이 오버랩된다. 종국적 가치는 다르지만 성취하려는 욕구나 과정은 비슷하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관중들은 정정당당한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무엇이 되려는 사람들은 결과가 나올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 승복하는 자세가 아름답다. 물론 체급을 구분하고 잘 다듬어진 규칙을 공평하게 적용하는 심판진이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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