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 교정자문위원

"너 고소!"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모 변호사가 자신의 개업 광고문안에 호기롭게 사용한 카피이다. 눈을 부릅뜬 채 삿대질을 하는 본인의 이미지와 함께 쓰인 그 문안은 제법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신문지상을 장식했는가 싶더니 변호사 품위위반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단체로부터 제지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해프닝은 불미스러운 일로 낙마한 변호사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노이즈 마케팅을 시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미 우리나라는 각종 무분별한 고소·고발로 몸살을 앓고 있은 지 오래이고, 소중한 경찰인력의 상당수가 그런 무분별한 고소·고발 사건의 깔끔한(?) 뒷마무리에 동원되고 있어 다른 민생치안에 소홀해 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변호사님은 그런 고소 수요를 읽고,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던 것뿐인 듯하다. 물론 필자도 고소대리 업무나 고소장 작성을 종종 하곤 한다. 그리고 간혹 분명 죄가 됨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경찰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까닭에 그 자초지종을 따지러 잔뜩 힘을 주고 찾아간 적도 꽤나 있었다.

그 때마다 경찰 담당자들은 수많은 고소인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고소인들의 하소연을 듣고 달래주는데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면서 쩔쩔매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했다. 나의 의뢰인의 사건의 처리가 왜 그리되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담당 경찰관은 사건을 제대로 판단할 시간조차도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후 필자는 묻지마 고소에 치이고, 친절을 강요받는 감정노동자로 전락한 경찰관들이 민생치안에 보다 신경 쓸 수 있도록 모 경찰서에서 형사민원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단순 민사사건에 불과함에도 '채무자에 대한 경찰의 전화한통', '채무자의 연락처 탐지'를 위해 경찰력을 빌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경찰을 통한 민사적 합의를 바라고 고소했으니 수사보다 합의에 신경써 달라고 요청하는 얌체 고소인들도 있었다. 민사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면 별도로 돈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경찰의 힘을 빌어 무료로 사건을 신속히 해결해 보자는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성숙한 법의식이 개인의 경제적 필요에 침식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러한 현실은 외국과의 비교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우리와 법제와 문화가 유사한 일본과 비교해 보면 전체 사건에서 고소 사건 점유율은 우리나라가 57배가 높고, 절대적인 피고소 인원은 67배, 인구 10만명당 피고소인원은 무려 171배에 달한다. 단지 문화나 민족성의 차이에서 오는 격차라고 보기에는 그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아마 제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통상 형사재판은 민사 소송보다 빨리 진행되고, 고소장 한 장만 제출하는 수고로움만으로 각종 피해입증에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 현상 뒤에는 변호사의 책임도 일부 있다. 탐정업이 도입되지 않은 현 제도하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사건해결의 증거들을 보다 쉽게 찾기 위해 공권력에 슬며시 기대려는 유혹을 변호사들도 종종 받는다. 나아가 사건처리를 위해 민·형사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치면 노련한 변호사라는 인상을 의뢰인에게 줄 수도 있을 것을 기대감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폐단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 사법 선진국 중에는 수사·재판 비용을 책임자에게 부담시킨다거나, 민사적 합의를 위한 무분별한 고소를 막기 위해 재판 도중 합의를 금하는 제도 등을 마련한 나라들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런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가 고소 공화국이 된 원인은 제도의 미비에 기인했을 수도 있다. 제도적 보완이 미흡할 경우 고소를 자신의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변호사는 계속 늘어나고, 경찰을 사적 합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무리한 고소를 통해 부를 창출하려는 변호사는 훌륭한 변호사로 인정받기 어렵고, 모두를 위한 치안인력으로 사욕을 채우는 것은 다수의 선량한 시민에 대한 민폐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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