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이 바르면 말도 순조로움

총선이 막바지에 다다르니 후보자들의 행보도 바빠지는가 보다. 아내와 장보러 마트에 갔더니 그간 얼굴보기 힘들었던 위세당당한 국회의원께서 입구에서 허리굽혀 악수를 청해왔다. 옆에 자리한 보좌관은 "이번 선거에서 꼭 당선시켜주십시오. 주민의 공복이 되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연신 내뱉었다. 집으로 돌아와 장본 물건들을 대충 정리하고 TV를 켰다. 마침 총선 후보자들의 토론회가 중계되고 있었다.

후보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장점, 그간의 치적, 미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공약들을 유창하게 나열하였다. 그러나 사회자가 정당의 문제, 그간 정치 행보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질문을 하자 그 유창했던 말솜씨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어눌한 사람처럼 말을 빙빙 돌려대기 시작하였다.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論語(논어)』 「子路」편의 재미있는 고사가 떠올랐다. 春秋時代(춘추시대), 魯國(노국)의 大司寇(대사구) 孔子(공자)가 魯定公(노정공)에게 실망하여 제자 子路(자로) 등을 데리고 衛國(위국)으로 떠나갔다. 衛靈公(위령공)이 孔子를 환영하면서 후한 俸祿(봉록)을 내렸다. 이에 子路가 孔子에게 "만일 衛靈公이 선생님에게 국가를 관리하라고 부탁한다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孔子가 먼저 "名分을 바르게 하겠다(正名)", 왜냐하면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도 순리에 맞지 못하기 때문이다.(名不正, 則言不順)"라고 대답하였다. 子路가 孔子의 사고방식이 실제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여겼다. 孔子가 한 걸음 나가면서 "만일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고, 禮樂(예악)과 刑罰(형벌)도 실시할 수 없기에 백성을 순종하게 만들 수 없다"라고 설명하였다. '名正言順'은 이 고사에서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名分(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왜 이러한 정책을 실행하는지, 실행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한 명분. 이 명분은 정당, 혹은 정치가의 신뢰 형성의 초석이다. 허나 한 시민으로서 이번 선거의 정책토론을 보면서 느낀 점은 과연 우리나라 정치에 대의명분이 있는지, 아니면 정당의 이익에 따라 되지도 않을 명분을 꺼내드는 것인지,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사뭇 회의에 빠져버렸다.

그래도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선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투표는 꼭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민심이 어떤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나아가 자신이 속한 정당의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시각은 어떤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마트 입구에서, 사거리 모퉁이에서 시민에게 머리숙여 감사하는 初心(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명분이 바로 그 초심에서 나오니 말이다.

공자의 "만일 말이 순리에 맞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고, 禮樂(예악)과 刑罰(형벌)도 실시할 수 없기에 백성을 순종하게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새삼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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