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배·윤홍락 후보, 새 선거문화 정착 이정표 남겨

여름의 문턱을 가기도 전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제 20대 총선이 끝났다. 치열한 경쟁을 치른 후보자들은 당선의 희열과 낙선의 좌절로 운명이 엇갈렸다. 선거가 어느 때보다 과열되다 보니 이번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98명의 당선자들이 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런 가운데 자발적인 공명선거 합의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깨끗한 선거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두 후보자가 주목받고 있다.
충주선거구에서 여야 맞대결을 펼친 새누리당 이종배(58)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윤홍락(54) 후보가 바로 그 당사자다. / 편집자

윤홍락 후보자가 이종배 당선자를 찾아가 꽃다발을 건넨 뒤 두 후보자가 함께 손을 들어 축하하는 모습.

충주는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재보궐선거 5회를 비롯해 무려 11번의 선거를 치른 자랑스럽지 못한 선거역사를 갖고있다.

지난 2004년, 당시 이시종 충주시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면서 충주시장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그는 뒤에 국회의원직을 그만두고 도지사 선거에 나서면서 다시 충주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치러야 했다.

2006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던 한나라당 한창희 시장이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시장직을 잃으면서 다시 충주시장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2010년에는 우건도 시장이 충주시장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상대 후보였던 김호복 전 시장의 고소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서 이듬해인 2011년에 다시 충주시장 보궐선거를 치렀다.

2011년 충주시장 재보궐선거에는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이종배 후보가 당선돼 2년 정도의 임기를 마쳤다.

이어 2014년에는 당시 윤진식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직을 그만두고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다시 충주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새누리당 이종배 후보가 또 다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돼 1년 정도의 임기를 마쳤다.

충주에서 기존 선거와 재보궐선거까지 합쳐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 꼴로 선거를 치른 셈이다.

이 때문에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새누리당 이종배 당선자는 반쪽짜리 시장과 반쪽짜리 국회의원을 역임한 이채로운 이력을 갖게 됐으며 이번에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정상적인 4년 임기의 국회의원직을 수행하게 됐다.

이처럼 충주지역에서 재보궐선거가 많았던 것은 후보자들 간 과열경쟁으로 인해 선거법위반 사례가 많은데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낙선자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고소·고발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충주는 '선거공화국'이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얻기도 했다.

잦은 선거의 휴유증으로 민심은 분열되고 찢어져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끼리 갈등의 골이 깊어졌으며 시민들이 선거라면 혀를 내두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20대 총선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컸다.

특히 이번 선거는 여야 두 후보자가 맞대결을 펼치는 구도로 짜여져 과열경쟁이 우려됐고 선거 초반부터 지지자들의 과열양상도 감지됐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선거를 1개월여 앞둔 지난달 16일 두 후보자는 자발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손을 맞잡고 공동으로 '공명선거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번 선거에서 공명하고 깨끗한 선거를 통해 충주에서 새로운 선거문화와 정치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네거티브선거가 아닌 정책선거로 경쟁을 펼치고 당선자는 상대 후보의 공약 중 공감이 되는 내용을 자신의 정책에 반영한다"는 내용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종배 후보자와 윤홍락 후보자가 양 측 선거사무소 관계자들과 함께 공명선거에 합의하는 모습.

충주시민들은 이를 반겼지만 설마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약속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정치인들의 합의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후보자는 이같은 약속을 지켰다.

선거기간 중 상대방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성 비방을 하지 않았고 수사의뢰나 고소·고발도 없었다.

역대 선거구에서 가장 혼탁한 선거구 중 한 곳으로 꼽혔던 충주시 선거구에서 이번 총선과 관련해 단 한건의 고소·고발 사례도 접수되지 않았다.

선거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표찰 미부착과 현수막 게시 위반 등 가벼운 위반 사례로 선관위가 현지에서 시정조치를 내린 것은 몇 건 있었지만 특별한 선거사범도 없었다.

충주선관위 관계자는 "불·탈법 선거를 막기 위해 19명으로 공정선거지원단을 구성해 감시에 나섰지만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며 행복한 푸념을 했다.

"반드시 충주에서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두 후보의 의지가 빛을 발한 것이다.

20대 총선 개표방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 13일 오후 9시께 새누리당 이종배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이 후보의 지지자들이 웅성댔다.

이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시점에 상대 후보인 윤홍락 후보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윤 후보는 빽빽하게 들어선 이 후보의 지지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가장 먼저 이 후보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전하며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반가운 손님(?)을 맞은 이 후보는 윤 후보의 손을 맞잡아 치켜 올리면서 당선 축하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후보의 선거사무소에 모여있던 그의 지지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종배'와 '윤홍락'을 번갈아 연호하면서 두 후보의 아름다운 모습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현장에 있던 언론사 취재진들 역시 예기치 못한 광경에 연실 카메라 셔텨를 눌러댔다.

두 후보의 '아름다운 약속'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당락은 엇갈렸지만 이날 손을 맞잡은 두 후보자의 모습은 모두가 승자였다.

이종배 당선자는 약속대로 상대 후보인 윤홍락 후보의 공약 가운데 '충주시민위원회'를 구성을 채택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끝까지 약속을 이행해 준 상대 윤홍락 후보에 대한 보답이다.

선·후배 두 정치인들이 보여준 이번 아름다운 약속은 '선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충주에서 새로운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는 이정표로 남게 됐다.

이종배 당선자는 "끝까지 소중한 약속을 지키고 당선을 축하해 준 윤홍락 후보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번 약속 이행이 앞으로 충주지역 선거문화와 정치문화에 새로운 시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홍락 후보는 "비록 선거에서는 졌지만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며 "당초 약속대로 앞으로 지역발전을 위한 일에는 여야를 떠나 이종배 당선자와 힘을 합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구철 /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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