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1994년 3월 23일 러시아 아에로폴로트 593편이 모스크바에서 이륙해 홍콩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가족을 태운 기장은 비행 중에 자녀를 조종석으로 불러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시켜 주었다. 조종사를 꿈꾸는 아들을 위해 기장은 잠시 조종간을 잡게 해줬는데 30초 후 자동조종장치(오토파일럿)가 풀리면서 비행기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기울다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75명이 전원 사망했다. 어처구니없는 기장의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장녀의 '땅콩회항' 때문에 한동안 곤혹을 치렀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이번엔 SNS 때문에 조종사 노조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조 회장은 지난 3월 13일 모 부기장이 페이스북에 조종사가 비행 전 수행하는 업무가 많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자 "조종사는 GO, NO GO(가느냐, 마느냐)만 결정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오토파일럿으로 가는데. 아주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과시가 심하네요. 개가 웃어요"라며 댓글을 달아 역풍(逆風)을 맞았다. 조 회장의 말이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비행기 사고의 역사를 보면 오토파일럿이 비행기의 안전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비행사고의 유형은 다양하다. 악천후나 기체결함이 많지만 항공기와 새가 충돌하면서 앞 유리가 부셔져 위기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가 국내에서만 연간 100여건 안팎에 달한다. 실제로 지난 2009년 승객 155명을 태운 US에어웨이 항공기는 운항중 철새 떼와 충돌하는 바람에 추락할 뻔 했으나 뉴욕 허드슨강으로 비상동체착륙을 시도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항공기와 조류 충돌은 청주공항에서도 연간 9건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대형사고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실례로 2012년 11월에 발생한 공군 제 8전투비행단 소속 T-510B 블랙이글항공기 추락사고는 담당정비사가 사고항공기의 피치(Pitch/항공기 상승과 하강을 조정하는 장치)를 정비하면서 깜빡 잊고 이 장치에 꽂았던 차단선을 뽑지 않는 바람에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청주공항 활주로에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부대 내에서 지역 기관장 만찬에 참석했던 한 여성이 한밤중 승용차를 몰고 전투비행단과 함께 사용하는 공항 활주로를 16분간 질주한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차량이 활주로로 진입할 때 초소에서 확실히 제지하지 못했다. 군기(軍紀)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청주공항은 20여분동안 항공기 4편 운항이 지연됐다.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지난 3월 18일에는 청주공항에서 착륙하는 대한항공 여객기와 이륙하려는 중국 남방항공 여객기가 부딪칠 번한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형사고 한 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와 관련 있는 소형사고가 29회 발생하고, 소형사고 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사소한 징후들이 300번 나타난다는 통계적 법칙이 있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사소한 부주의가 통한(痛恨)의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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