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총괄코디네이터

오늘 아침에는 분디나무 새 순 잎에 물고 양성산을 한 바퀴 돌았다. 하얀 찔레꽃이 향기를 흩뿌리며 길동무가 돼 주고, 아카시아 향은 정처 없는 나그네를 시심에 젖게 했다. 하루가 다르게 푸른 빛 가득한 숲길은 만나는 매 순간마다 새로움과 긴장과 순박함의 상징인 처녀성을 품고 있다. 오월은 너무 옅지도 짙지도 않은, 그렇지만 청순한 푸름의 색채를 지녔다.

어린 아이의 살결같이 보드라운 분디나무 새 순은 산 정상쯤에서 사르르 녹으며 목젖을 타고 가슴 깊이 파고드는데 진한 생명의 내음과 맑은 향기가 끼쳐온다. 번잡한 일상의 상처와 고통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고, 그 자리에 햇빛 번지는 맑은 하늘로 가득 채우는 신비를 맛본다. 자연 앞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사랑을 하게 됨을 실감케 한다.

자연이 한 일은 언제나 옳았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자연을 벗 삼고자 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진리와 지혜와 창조의 가치를 찾으려 했다. 자연의 모든 것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엿보고 삶의 방향을 읽으며 미래를 예견하기도 했다.

이것들은 다시 인문학이 되고, 문사철(文史哲)이 되어 인류 문명의 새로운 궤적을 만들어 왔다. 인간이 위대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지난 주 일본 동경의 근대문학관을 엿보면서도 인문학이야말로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존엄성을 인간의 힘으로 재해석한 인류 최고의 유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근대문학 150년' 기획전에는 묵향 가득한 육필원고에서부터 작고작가의 생애를 다양한 유품과 작품 등을 통해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었는데 작가의 가슴 시리고 아픈, 애틋하고 절절한 메시지를 만날 때마다 내 가슴이 일렁거렸다.

수많은 인문학 장르 중에 문학이 으뜸인 것은 다채로운 예술로 재생산되고 인간의 심성과 영혼의 세계까지 침투하기 때문이다. 좋은 문학작품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금을 울리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새로운 도전을 허락한다. 세월이 지나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눈물을 토하고 빼앗긴 조국 앞에서는 두 주먹을 쥐게 된다. 진한 사랑과 열정을 담고 창조의 세계를 향한 거침없는 질주를 허락한다.

게다가 문학은 드라마나 영화로, 오페라나 연극으로, 춤과 노래와 공연콘텐츠로, 미술과 건축 등으로 새롭게 선보이면서 다양한 예술을 창조하는 무한한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 세익스피어는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시공을 뛰어넘는 불멸의 무대, 최고의 예술성을 가져다주지 않던가. 문학의 시대는 곧 신의 시대, 인간의 시대다.

국립한국문학관의 청주유치 당위성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인문학의 한 장르가 아니라 시대를 이야기 하고, 다양한 문화예술로 선보이며, 새로운 미래세계를 선도하는 창조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는 최적화된 곳이기 때문이다.

직지의 창조정신과 세종대왕 초정르네상스, 우암 송시열, 책벌레 김득신, 그리고 단재 신채호와 벽초 홍명희 등의 민족문학정신은 세계 최초로 1인1책 갖기와 다양한 융복한 문화예술로 발전시키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은 곧 하나의 살아있는 박물관이기에 머잖아 85만개의 시민 스토리박물관이 탄생할 것이다.

인구 대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공립·사립도서관을 갖고 있고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영화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전국연극제 개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되고, 지역특화 문화도시와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선도지구로 활약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국립청주박물관, 시립미술관, 사립미술관, 공연예술공간 등 문화기반시설과 때가 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무엇보다도 한국문학의 ICT콘텐츠로 특성화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산업과 지식정보화 산업 중심지이기에 문학자료의 디지털아카이브와 빅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있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파사드 프로젝트, 디지로그 문학공원 등도 가능하다. 인문학의 숲, 문학의 바다가 출렁이는 청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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