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선 유력 후보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8일 이례적으로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정치인에게는 표를 주지 말라"는 언급을 내놓았다. 그는 또 "시리아를 비롯한 각지에서 자행되는 전쟁범죄에 몸서리 치고 인종차별과 증오, 특히 정치인들과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인종차별과 증오)을 하는 데 분노한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졸업식에서 법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 내놓은 연설의 요지였다. 발언이 주목을 끈 것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는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종종했다.

반 총장이 특정현안이나 인물에 대해 각을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이번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됐다.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라는 의제는 반 총장이 임기동안 전세계적 확산을 위해 중점을 뒀던 개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종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평생 외교관으로 지낸 그의 경력에다 충청도 출신(음성)이라는 지역성을 겹쳐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는 '유만(油鰻·기름장어)'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오는 12월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6개월정도 남겨 설사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부딪힐 일이 없어 가능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대선을 염두에 둔 발언 아니냐는 시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날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에 앞서 몇마디 했지만,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게 답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 노무현 정부에서 인사비서관을 지낸 최광웅씨가 최근 발간한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반 총장에 대해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운명을 지녔다·고비고비 행운이 따랐다"고 소개했다. 그가 첫번째로 꼽은 반 총장의 행운은 제천 출신 유인태 당시 정무수석의 처남(당시 외교부 국장)이 장관으로 천거한 것이다. 두번째 역시 장관 추천이 가능했던 환경을 꼽았다.

2004년 1월 국가안전보장회의와 외교부가 이라크 파병 문제로 충돌했을 당시 외교부 북미 3과장이 노 전 대통령을 '반미적'이라고 표현했다가 장관부터 줄줄이 옷을 벗은 사건 덕에 가능했다는 점을 기술했다. 세번째 행운은 유엔사무총장 출마를 준비했던 홍석현 주미 대사가 2005년 7월 터진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져 낙마한 사건 이었다. 그 덕에 반 총장은 2006년 2월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했다.

한국 방문을 앞둔 반 총장이 미국 대선 후보를 향한 일갈은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트럼프가 누구인가. 그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을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극단적 발언을 한 인물 아닌가. 대선 정국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임기를 끝내는 그에게 또 행운이 올까? / 한인섭 부국장 겸 정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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