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시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널리 알려진 시인 최영미가 생활보조금 대상이 됐다는 보도에 함만복의 시 '긍정적인 밥'이 떠올랐다. 시인은 야박한 원고료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현실은 씁쓸하다. 시 한편 써서 수중에 돈이 들어왔는데 고작 생각나는 게 쌀과 국밥과 소금 같은 생필품과 저울질할 형편이니 마음이 편치 못할 것이다.

가난한 시인이 한둘은 아니지만 최영미는 좀 의외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52쇄까지 찍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내가 연간 소득이 1천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자란다"라고 올렸다. 독자 마음을 더욱 짠하게 하는 것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라는 탄식 때문이다. 그가 생활보조금 신청을 하면 연간 59만2천원을 받는다. 그 돈이 살림에 얼마나 보탬이 될까.

시인이 가난한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하다못해 대학 겸임교수나 지자체 문화강좌 강사로 나선 시인들은 그나마 형편이 낫지만 부업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도 힘든 시인은 많다. 천상병은 생전 "나는 부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 유일의 시인"이라는 말을 했다.

타계 전까지 인사동에서 귀천(歸天)이라는 찻집을 운영했던 아내 목순옥 여사 덕분이다. 부인의 찻집이 아니었으면 보석같은 그의 시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성윤석처럼 묘지관리인을 하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늦장가를 들어 강화도에서 아내와 인삼점포로 생계를 꾸리는 함만복같은 시인도 있다.

지난 2007년 10월 기초예술연대가 발표한 문인의 소득 실태조사 결과 설문에 응한 시인과 소설가, 문학평론가 등 130명 가운데 41%가 글을 써서 얻는 순수 연평균 소득이 100만원 이하라고 답했다. 심지어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고도 원고료를 못받는 문인들도 20~30%에 달했다. 고료 대신 정기구독권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9년전 조사한 자료라 평균 소득이 오르긴 했겠지만 그동안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작가들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

최영미가 자신의 곤궁한 형편을 시니컬하게 페북이 올린날 소설가 한강은 세계 3대 문학상이라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와 함께 받은 상금이 8천만원이다. 책 안읽는 나라에서도 치열한 작가정신은 살아있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는 2007년 출간 이후 9년만에 베스트셀러 목록 정상에 올랐다. 최근엔 1분에 17권씩 팔려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라는 보도도 나온다. 평소엔 거들 떠 보지도 않다가 해외의 권위있는 상을 받아야 책이 날개 돋인듯 팔리는 현상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소설이 이러하니 시집을 돈내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최근 인문학이 열풍이라지만 유명시인 조차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정도면 대학 인문학과가 폐과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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